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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 광장 ‘3·15선거 불법·무효선언문’낭독과 시민들의 호응

오전 10시 25분 경 시위대가 시청 앞 광장에 도착하자 윤보선 의원은 다시 ‘3·15선거 불법·무효선언문’을 낭독했다. 이어 조한백 의원이 시민들을 상대로 시위 구호를 외쳤고, 곽상훈, 정준, 유진산, 박순천 의원이 지프차 위에 올라가 약 5분간 연설을 했다. 곽상훈 의원은 “모든 자유와 국민의 주권을 도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언론· 집회·결사의 자유를 찾기 위해 국민들의 협조를 호소하였다. 정준 의원은 “3·15선 거의 죄악을 반성하지 못하면 자손만대까지 저지른 죄를 씻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유진산 의원은 “정부가 3·15선거를 치밀한 계획 하에 불법으로 감행하여 국민을 노예 이하로 취급하였다”고 규탄하며,“금수 이하의 현 사회로부터 국민들이 탈출해야 된다”고 외쳤다. 박순천 의원은 “이승만 정권을 쳐부수지 않고는 이 땅에서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시청 광장에 둘러선 시민들은 이러한 연설에 박수를 치고 만세를 외치기도 하였다.
오전 10시 50분 경 박순천 의원의 만세 삼창 후 시위대는 애국가와 구호를 외치며 을지로를 향해 행진했다. 인도를 메운 시민들은 곳곳에서 시위대에 합류하려 했다. 시청 뒷마당에 집결해 있던 수 백 명의 정·사복경찰관, 기마순경 및 교통 백차 등은 일제히 몰려나와 시위대를 양쪽에서 에워싸고 시민들의 합류를 제지했다. 경찰은 시위대원이 아닌 사람은 인도로 올라서라고 외쳤으나, 시위대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시위대의 행진이 계속됨에 따라 경찰의 방해를 무릅쓰고 시민들은 시위대열에 속속 참가하여, 2천~3천 명의 인파가 도로를 뒤덮었다.『동아일보』1960. 4. 7 조1·3면.
일부 기록은 1천여 명으로(『조선일보』1960. 4. 6 석1면), 반면 일부 기록은 4천여 명으로 기록하고 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156쪽).
시위대에 가담하지 못한 수많은 인파들도 환호성을 울리며 박수를 보냈고, 인도를 따라 시위대를 꾸준히 따라가는 시민들도 있었다. 시위대는 “3·15선거는 불법이다 무효다”, “ 이승만 정부는 물러가라”, “정·부통령선거 다시 하라”, “ 살인선거 책임자들을 처단하라”, “ 마산사건 원흉을 잡아내라”, “ 평화적 데모의 자유를 방해하지 말라”등의 구호를 외쳤고, 구호형식으로 된 100여 개의 플래카드를 동원했다. 또한 “이승만 정부는 물러가라”, “ 살인선거 책임자들을 처단하라”는 등의 격문,“ 3·15선거무효”, “ 백만 국군장병은 무얼 하나”라는 등의 삐라, 그리고 “하나님이여 이 민족을 굽어 살피소서”등의 수 만 장의 호소문을 뿌렸다. 이러한 격문과 삐라, 호소문은 민권수호국민총연맹·공명선거추진전국위원회·민주정치사수 전국학생투쟁위원회 등의 이름으로 작성되었다.『동아일보』1960. 4. 7 조1·3면 ;『조선일보』1960. 4. 6 석1·3면 ; 안동일·홍기범 공저, 155-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