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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행방불명자 김주열 시신발견

11일 오전 11시 경3·15의거사 편찬위원회,『3·15의거사』, 3·15의거기념사업회, 2004, 340쪽.
일부 기록은 오전 10시 경으로(『마산일보』1960. 4. 12 2면), 일부는 오전 11시 25분 경으로(안동일·홍기범 공저,『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1960, 164-165쪽 ; 조화영 편,『사월혁명 투쟁사 : 취재기자들이 본 사월혁명의 저류』, 국제출판사, 1960, 44쪽), 반면 일부 기록은 오전 11시 30분 경으로(『동아일보』1960. 4. 12 조3면), 일부 기록은 정오로 기록하고 있다(『동아일보』1960. 4.12 석3면).
마산시 신포동 중앙부두 앞 바다에서 부둣가 초소에 근무 중이던 군인들이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동아일보』1960. 4. 12 조3면 ; 3·15 의거사 편찬위원회, 340쪽.
일부 기록은 낚시꾼에 의해 시체가 발견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민권승리의 기록」,『실화』1960, 6월호, 63쪽 ; 안동일·홍기범 공저, 164-165쪽 ; 현역일선 기자동인 편,『사월혁명 : 학도의 피와 승리의 기록』, 1960. 59-60쪽 ; 지현모편,『마산의 혼』, 한국국사연구회, 1961,27-28쪽), 반면 『마산일보』는 2명의 고등학교 학생이 발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마산일보』1960. 4. 12 2면).
시체는 부두 제방에서 약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물위로 떠올라 조류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11시 30분 경 표류시체의 소문이 퍼지자 기자와 시민들이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목격자들은 3·15시위 과정에서 실종된 김주열 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흥분했다. 경찰서에서는 2명의 정복경찰관만이 와 있었다. 마산경찰서 수사계장 고인준 경감과 부산지검 마산지청 길영기 검사가 도착하고 나서야 시체 인양 작업이 시작되었다. 시체가 떠 있는 곳 부근에 거룻배를 타고 나가있던 어부가 갈고랑이로 시체를 끌어 배 위로 인양하였다.
인양 후에도 시체는 장시간 중앙 부두에 방치되어 있었다. 10대 소년으로 보이는 시체는 오른쪽 눈에 쇠붙이가 박혀있었고, 옷깃이 있는 흰 메리야스에 염색한 검은 군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현장에 온 김주열의 외외존이모 안영자는 시체가 3·15마산사건 당시 행방불명되었던 김주열이라고 확인하였다. 안영자는 김주열의 어머니인 권찬주의 이모이다.
오후 2시 경 『동아일보』1960. 4. 12 석3면 ; 마산일보사,『민주혁명 승리의 기록』, 1960,56쪽 ; 3·15의거사 편찬위원회, 342쪽.
일부 기록은 오후 2시 30분으로(현역일선기자동인 편, 60쪽), 반면 일부 기록은 오후 2시 경에 이미 시민들이 도립마산병원에 집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동아일보』1960. 4. 11 호외, 1960. 4. 12석1면 ; 안동일·홍기범 공저, 165쪽).
서득룡 마산검찰지청장과 길영기 검사의 지휘 아래 김주열의 시체는 마산시청의 쓰레기 청소차에 실려 도립마산병원으로 운반, 시체실에 안치되었다. 마산 시내에는 김주열의 시체가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도립병원 앞에는 격분한 시민들이 운집하였다.
도립병원 정문은 닫힌 채 2명의 경관이 지키고 있었다. 경찰은 시체실로 들어가려는 군중을 막기 위해 20여 명의 정복경관을 배치했다. 일부 시민들은 담을 넘어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도립병원을 겹겹이 에워싼 수많은 남녀 학생과 시민들은 큰 소리로 거칠게 항의했다. 오후 5시쯤 시민들의 힘에 의해 도립병원 정문이 개방되었다. 시민들은 김주열 시체가 안치된 시체실을 점령했다. 경관들도 몰려드는 시민들을 막지 못하였다.『마산일보』1960. 4. 12 2면 ;『한국일보』1960. 4. 12 조1·3면 ;『서울신문』1960. 4. 12 조3면 ;『동아일보』1960.4. 11 호외, 1960. 4. 12 조3면, 석1·3면 ; 안동일·홍기범 공저, 164-165쪽 ; 현역일선기자동인 편, 59-60쪽 ; 이강현 편,『민주혁명의 발자취 : 전국 각급학교 학생대표의 수기』, 정음사, 1960, 54-55쪽 ; 김재희 편,『청춘의혈 : 역사를 창조한 젊은 사자들』, 호남출판사,1960, 79-80쪽 ; 조화영 편, 44-45쪽 ; 지현모 편, 27-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