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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 제2마산사건 관련 홍진기 내무장관의 보고 청취 및 질의

국회 본회의에서는 제2마산사건에 관련하여 홍진기 내무장관의 보고를 듣고, 보고에 대한 질의전을 벌였다.동아일보』1960. 4. 12 석1면, 1960. 4. 13 조1면 ;『동아일보』1960. 4. 13 조1면『동아일보』에 실린 홍진기 내무장관의 보고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제2의 마산사건을 방지 못한 데 대해서 치안책임자로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번 사건은 오전 11시 경 해변에서 발견된 시체를 도립병원에서 해부결과 오후 4시 경 그 소문이 퍼지자 400-500명의 군중이 모여들어 파출소를 습격하면서 구호를 부르는 동안 200-300명이 증가되었다. 오후 6-7시 경 엔 700-1,230명으로 증가된 군중이 경찰을 향해서 데모하였고 경찰서에 40-50명이 침입하여 서장을 납치, 뒷문으로 데려가서 때렸다. 무기는 경찰이 가지고 있었으며 화약고 내의 수류탄 13개 중에서 2-3개를 꺼내 하나 둘 폭파하여 경찰관 4명을 부상케 하였다.
경찰은 총 16정으로 방위하였는데 김영길이라는 철공이 한명 우측요부 관통상을 입어 사망하였다. 데모대는 경찰서에서 퇴각하여 관공서 개인 집을 습격, 투석으로 유리창을 파괴하고, 밤 11시 45분 경 고개를 숙여 0시 40분 완전히 해산되었다. 경찰 손해는 21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중상이 9명이며 그중 2명은 생명이 위독하다. 오늘 오전 10시 10분 경엔 마산상업고등학교학생들이 시가행진하면서 애국가, ‘해방의 노래’를 하면서 경찰을 향해 오는 것을 경찰이 주의해서 일반 시민의 가담을 막았기 때문에 현재에 난폭한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지금도 신마산 쪽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데 경찰의 발포는 불가피한 경우 이외에는 하지 않도록 지시해놓았다. 경찰의 목표는 사태를 그대로 가라앉히는 방향으로 노력하여 하루속히 진압하는데 있다.『동아일보』1960. 4. 13 조1면
홍진기 내무장관의 보고 청취 후 야당 의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다음은『동아일보』에 실린 국회의원들의 질문과 홍 내무장관의 답변 내용이다. •김선태 민주당 의원 질의 홍 내무장관은 마산사건이 무엇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국민의 선거권을 박탈한데 기인하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산당 사수 운운한 것은 국가를 위태롭게 한 행위이다.
전국적으로 4할 사전투표, 야당참관인 축출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산에서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현지 경관들이 식민지에 대하는 것 이상으로 횡포와 확대를 했기 때문이다. 시체해부 결과를 극비에 붙이려고 한 행위는 살해자와 공모자적 심리가 아닌가? 제2마산사건은 내무장관이 직접 발포명령을 한 것으로 믿고 있다. 엊저녁 명령도 내무장관이 했는가?
이번 제2마산사건의 원인은 또 경찰들의 혹심한 고문행위에도 있다. 마산시민 70여 명이 고문으로 타박상을 입었다. 이런 고문경찰관들을 색출하여 형사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특히 경남도경 강력계장과 마산수사계장이 제1차 마산사건시 시체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회색트럭에 수 십 구의 시체를 실어서 처분하였다. 이제 물에서 그 중 2구의 시체가 나타났으니 홍 내무는 이들을 즉각 입건 구속해야하지 않겠는가?

•장택상 무소속의원 질의 내무장관은 수석국무위원으로서 이 대통령에게 그 자리를 물러가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국민에게 사과하도록 건의할 용의가 없는가? 내무장관은 3·15선거를 정당한 선거로 치렀다고 생각하는가 또는 부당한 선거를 치렀다고 생각하는가? 3·15선거의 수법이 꼭 공산당 식이다. 마산사건은 바로 그 공산수법을 싫다고 해서 일어난 것이 아닌가?
•이철승 민주당 의원 질의 내무장관은 제2마산사건의 동기와 원인을 말하지 않았다. 마산 앞바다에서 나온 시체가 도립병원에 운반됨으로써 운집된 수 백 명의 군중과 병원 측을 경찰이 격리시키려는 데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내무장관은 평화적 데모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난사행위를 묵인함으로써 무단정치로 나갈 것인가? 내무장관은 자유의 항쟁은 독재권력 속에 싹트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조영규 민주당 의원 질의 시체유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 것인가? 김주열의 시체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으며 타살이냐 총격사냐? 제2마산사건의 진압방법을 말해라. 민심수습방법은? 어제 저녁 사건에 경찰은 총을 몇 발이나 쏘았는가? 내무장관은 데모 대원을 700명, 1,200명이라고 하는데 수 만이라고 한 신문보도가 오보인가? 공산간첩 운운의 언동을 어떻게 지양시키겠는가?
•홍진기 내무장관 답변 제1마산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의 마산사건의 수사가 끝나기 전에는 내무부로 갔고, 내무부에 가서는 과거의 조사를 백지로 돌리고 일절의 수사를 검찰에 일임했기 때문에 불원 그 전모를 발표하게 될 것이다.
물에 떠오른 시체를 보이지 않으려던 경찰과 보려는 군중 사이의 경위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히 모르나, 경찰이 만일 시체를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면 그것은 데모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한 것일 것이다. 발포는 최악의 경우 외에는 하지 말라고 지시했으며 내가 발포를 지시한 바 없다. 제2마산사건의 수사도 검찰에 일임하였다. 시체유기에 대하여는 김 의원의 말대로 단서로 삼을 것이다.
이승만 박사의 당선을 의심할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이 대통령에게 하야나 사과 건의를 할 생각은 없다. 이 박사가 2/3의 다수표를 얻은 것도 의심할 사람 없다. 3·15선거의 부정여부는 대법원의 결과를 기다리겠다. 부정은 영구히 은폐할 수 없다고 믿는다.
제2마산사건의 원인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직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것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시체유기가 절대로 없게 하겠다. 시체유기 내용은 잘 모르겠다. 시체 해부 결과는 검찰이 그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진압방법은 그때그때에 적절한 방안을 발견하는데 노력하겠다. 총을 몇 발 쏘았는가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 데모 대원수의 정확한 조사는 밤이기 때문에 어렵지만, 나의 말은 경찰·검찰·헌병대의 종합보고이다.
마산은 조봉암 표가 제일 많이 나온 곳이고 공산당원이 많았던 곳이며 남해안의 밀수 근거지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제1차 소요 때에 민주당의 데모가 끝난 뒤에 조직적인 소요가 너무나 교묘하게 일어났다. 이번 2차 데모 시에도 11일 밤 10시 반 이북방송에 이미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점 등에서 공산당의 사주가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을 추측하는 것은 근거가 없지 않다. 만일 3·15선거가 불법선거라 하더라도 그것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시정되어야 한다.『동아일보』1960. 4. 13 조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