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대학생 시위의 시작을 열다
학생대표들은 “지금 이 시간에 사복경찰이 학원으로 침입하고 있는데도 학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냐?”고 마지막 한마디를 내던지며 퇴장하여 버렸다.
마침내 12시 50분, 학생들이 교정의 인촌동상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학교 당국은 급하게 “신입생 환영회를 무기 연기한다”, “학원 내에서의 정치적 행동을 엄금한다”는 글을 게시하였다. 그러나 이미 “전 학생은 12시 50분까지 교정 앞에 집합하라”고 쓴 학생들의 게시물도 학교당국의 눈을 피해 이곳저곳에 나붙은 상태였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해산시킬 목적으로 마이크를 높이 달고 “학생들은 본분을 지켜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은 저마다 도서관과 강의실로 뛰어다니며 시위를 독려하였다.
드디어 오후 1시 경, 3천 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한마디로 대학은 반항과 자유의 표상이다. 이제 질식할 듯한 기성독재의 최후적 발악은 바야흐로 전체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기에 역사의 생생한 증언자적 사명을 띤 우리들 청년학도는 이 이상 역류하는 피의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 만약 이같은 극단의 악덕과 패륜을 포용하고 있는 이 탁류의 역사를 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세의 영원한 저주를 면치 못하리라. 말할 나위도 없이 학생이 상아탑에 안주치 못하고 대(對)사회투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오늘의 20대는 확실히 불행한 세대이다. 그러나 동족의 손으로 동족의 피를 뽑고 있는 이 악랄한 현실을 방관하랴.
고대생 동지 제군!
우리 고대는 과거 일제 하에서는 항일투쟁의 총본산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사수하기 위하여 멸공전선의 전위적 대열에 섰으나, 오늘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한 반항의 봉화를 높이 들어야 하겠다.
우리들 청년학도만이 진정한 민주역사 창조의 역군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 총궐기하자.
구호
一. 기성세대는 자성하라.
一. 마산사건의 책임자를 즉시 처단하라.
一. 우리는 행동성 없는 지식인을 배격한다.
一. 경찰의 학원출입을 엄금하라.
一. 오늘의 평화적 시위를 방해치 말라.
고려대학교 학생 일동
2. 학원의 자유보장을 요구한다.
3. 기성세대를 불신하며 각성을 촉구 한다.
우리는 이 건의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최후의 일각까지 투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