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설득으로 시위대는 학교로
계속하여 고려대 출신인 민주당 이철승 의원이 올라와 “나는 이철승이다. 가슴 아프고 눈물 난다”고 첫마디하자 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43명의 학생들만은 오후 8시 10분 경까지 앉은 자세로 스크럼을 짜고 철야 농성에 들어갈 기세를 보였다. 그러나 150명 정도의 경찰관들이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승용차에 분승하여 귀가조치 하였다. 그들은 해산되기 전에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서울신문은 “경찰관에게 얻어맞았다는 30명의 학생들은 끝내 학교로 돌아가기를 거부코 의사당 앞에서 계속 농성 하려고 하는 것을 7시 반쯤 지나 경찰관들이 강제로 한 사람씩 택시를 잡아 태워 보냈다. 이들을 보내는데 있어 경찰관들은 실력행사를 하였으며, 이에 대항하는 학생과 경찰관 간에는 치고받는 난투극까지 벌어졌었다”고 보도하였다(『서울신문』1960. 4. 19 조3면).
一. 궐기하라 애국동표여, 36년을 두고 피를 흘려 전취한 우리 민주주의가 지금 몽둥이와 총검 앞에서 피 흘리며 애소하는 저 구슬픈 소리를 우리는 듣고 있지 않는가. 민족을 위한다는 위정자들이여, 그대들의 이름은 부귀요 영화이며 몰인정한 위선자라고 우리 국민은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一. 집권당 위정자여, 그대들이 떼어버렸던 양심을 다시 찾지 않으려는가. 지금 거국적인 민중궐기의 피 끓는 이 호소를 듣고 어서 그 양심을 다시 찾아 민권수호에 목숨 바친 지하에 계신 선열과 시달리고 통곡하는 우리 국민 앞에 늦진 않아서 왔으니 사과하라.
一. 우리는 지금도 용서하여 줄 용의가 있다. 같은 핏줄기에 단군의 자손이기에 동표여 어서일어나 집권당의 사과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