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글자 크기 조절

희생학생 추모시위, 도지사 면담 요구

오전 9시 40분 경, 전북대학교를 비롯하여 전주공업고등학교영생고등학교 학생 등 약 100여 명이 남계동 소재 합동버스정류장에 모여 궐기선언문을 낭독한 다음 시위를 시작하였다.『전남일보』1960. 4. 25 2면.
일부 기록에서는 ‘오전 10시 경’으로 기록하였다(4·19혁명부상자회 광주·전남지부 호남 4·19 30년사 편찬위원회, 『호남 4·19 30년사』, 삼화문화사,1995, 191쪽).
전남일보는 이 시위가 “서울 모대학생 10여 명의 지휘로”이루어졌다고 기록하였다(『전남일보』1960. 4. 25 2면).
이들은 스크럼을 짜고 중앙통을 거쳐 남문·주차장·방송국 앞·역전 5거리·오스카 극장 앞·도청 앞·공설운동장을 따라 돌며, “학생수업을 정상화 하라”, “학원의 자유를 달라”, “경찰은 신성한 학원에 침입 말라”, “계엄령을 해제하라”, “정부는 마산과 4·19사건의 책임을 지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러는 동안 성심여자고등학교와 전주여자고등학교 여학생 및 국민학교 학생도 참가하여 대열은 2천여 명으로 늘었다.고광준, 「4월의 전북 학생데모사건을 증언한다 - 취재기자가 훑어본 밑바닥」, 조화영 편, 『사월혁명투쟁사 : 취재기자들이 본 사월혁명의 저류』, 국제출판사,1960, 275-276쪽.
일부 기록에서는 약 1만 명으로 늘었다고 하였으며(현역일선기자동인 편, 『사월혁명 : 학도의 피와 승리의 기록』, 1960, 152-153쪽), 조선일보는 3천 명으로 기록하고 있다(『조선일보』1960.4. 24 석3면).

이들은 오전 10시 20분 경 도지사 관사 앞에 도착하여 관사를 포위하고 박정근 도지사를 불러냈다. 그러나 박 지사가 공설운동장에서 만나주겠으니 그리로 가라는 말에지사와 동행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좌절되었다. 시위대는 “계엄령이 실시되지 않는 이곳에 등교를 억제하는 일을 없애라”, “계엄령을 철회하라”, “마산사건을 조속 해결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11시 30분 경 다시 도청으로 몰려들었다. 이때 도청 담 위에서 전주고등학교 교장이 올라가 해산을 요구하자 시위대는 야유를 퍼부었다. 이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등의 군가를 소리 높여 부르며 도지사를 나오라고 요구하며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깼고, 달려온 경찰백차에도 투석하여 유리창을 깼다. 그러나 무장경찰들은 이 시위대에 총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마침내 11시 50분 경 박 지사가 시위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위대 대표들은 박지사에게 “학교문을 열어라”, “사표를 내라”는 등등을 요구하였다. 시위대 앞에 나선 박 지사는 학생대표들의 요구를 듣고 평화적인 시위를 해주도록 부탁하면서 “계엄령을 철폐하라”, “학원의 문을 열어라”, “지난 20일 전주의 데모대 연행학생에게 폭력을 가한 경찰관을 처벌하라”, “4·19사태 당시 희생된 본도 출신 학생의 동상을 세워 달라”, “지사는 물러가라”는 등 수 개 요구조항에 낱낱이 답변하고,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는 여러분의 의사를 중앙에 반영시킬 것을 약속하겠다”고 언약하였다. 또한 “학교의 문을 열어라”는 요구는 중앙과 절충하여 조속히 개교토록 힘쓸 것이며, 시위학생구타 경관은 조사해서 처벌하겠고, 4·19희생학생 동상은 건립 중에 있으니 서서히 다시 논의하자고 대답하였다.
오후 1시 경까지 머물러 있던 시위대는 박 지사의 답변을 듣고 일부는 자진해산 귀가하고, 일부는 공설운동장의 장례식장으로 향하였다. 이들 시위학생들은 또한 4·19본도(本道) 출신 희생학생의 동상을 도청 앞에 건립키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전북일보』 4293. 4. 25
시위대는 4·19사건에 희생된 학생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2분간 하고 다시 오후 2시부터 있을 ‘4·19사건 희생학생 합동장례식’장소인 공설운동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서울신문 전주지사를 습격하여 책상과 문짝 등을 파괴하였다. 이어 자유당 전북도당 당사 및 대한부인회관, YWCA 회관 등을 습격하여 돌을 던져서 간판을 모조리 떼어내고 행진하였다. 공설운동장에 집결한 이들은 4·19희생자를 위하여 명복을 빌고오후 2시 10분 경 해산하였다.『전북일보』4293. 4. 26 3면 ; 고광준, 275-276쪽 ;『전남일보』1960. 4. 25 2면 ; 조화영 편, 『사월혁명투쟁사 : 취재기자들이 본 사월혁명의 저류』, 국제출판사, 1960, 275쪽 ; 현역일선기자동인편, 152-153쪽 ; 『조선일보』1960. 4.24 석3면 ; 『동아일보』1960. 4. 25 석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