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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대학교수단 시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마지막으로 선언문 낭독

혼잡한 시위대는 오후 6시 50분 경 드디어 마지막 코스인 국회의사당 앞에 당도하였다. 그 무렵, 이미 군대가 탱크를 앞세우고 국회의사당 앞에 나타나기 시작, 시위대를 위협하였다. 이항녕 교수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다시 한 번 시국선언문을 낭독하였다.『동아일보』1960. 4. 26 석3면 ; 안동일·홍기범 공저, 280쪽 그러나 학생들이 군중의 합세를 막기 위해 교수들을 단단히 둘러싸고 있어 시국선언문은 군중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6시 55분 경, 시청 앞 쪽에서 “지금은 계엄선포 중이니 시민 여러분은 진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통행금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이제 더 이상 데모를 계속하지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하는 계엄사령부 선무반의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동아일보 기자, 「4·19에서 4·26까지의 서울 : 일선취재기자의 수기」, 이강현 편, 『민주혁명의 발자취 : 전국 각급학교 학생대표의 수기』, 정음사, 1960,255쪽 답답했던 군중은 “마이크를 뺏어라”는 고함과 함께 몰려갔고, 교수들은 통금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정석해 교수의 선창으로 “대한민국 만세!”삼창을 하고 해산하였다. 그러나 흥분한 군중은 해산할 줄 몰랐다.안동일·홍기범 공저, 280쪽 ; 조화영편, 1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