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글자 크기 조절

학생들의 피로 물든 종로거리에선 더 큰 울분이

대학교수단을 따르는 시민과 학생들로 종로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지나던 전차·버스·택시·승합차 등 모든 차량이 일제히 정지하면서 보내는 박수와 만세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학생들의 피로 물들었던 문제의 종로4가를 지나칠 때와 종로2가를 통과할 때 대학교수단의 울분은 더욱 높아졌고, 따르는 시민들과 학생들의 수도 수 천 명을 헤아렸다. “학생 죽인 살인귀를 처단하라”는 구호가 울렸을 때는 버스 속에서도 전차 속에서도 시민과 학생들이 환호하였다. 백발의 교수로부터 젊은 교수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 요구하며 구호를 부르고 질서정연하게 종로거리를 지나칠 때 양쪽 빌딩 속에 있는 다방, 미장원, 병원에서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불렀다. 시민들은 자꾸만 이 시위대열에 끼고자 하였고, 학생들은 이행렬이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끝마칠 수 있도록 대열의 양편에서 이들을 막았다. 시위에 나선 교수들은 화신백화점 앞에 이르도록 30분 이상 쉴 새 없이 구호를 외쳤다.이들을 뒤따르는 군중은 어느덧 만 명에 가까웠다. 을지로 입구를 거쳐 미국대사관 근처에 다다를 무렵에는 걷잡을 수 없는 노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교수단은 대열을 깨뜨리지 않았으며, 오후 6시 40분 경 미국대사관 앞을 통과할 때엔 애국가를 불렀다.『동아일보』1960. 4. 26 석3면 ; 조화영 편, 151-152쪽 ; 김재희 편, 108-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