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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미 사단장, 이승만 대통령 사임 소식 발표

오전 10시 30분 경, 매카나기 주한미대사와 유엔군 대표가 공포 발사 중에 군중을 뚫고 경무대로 달리는 것이 보였다. 이 광경을 본 시위대는 박수로 환호하였다. 곧 이어 공보실 보도차가 중앙청 앞에 출동하여 제15사단장 조재미 준장이 마이크를 붙잡고 이 대통령 사퇴담화의 요지를 발표했다.사퇴 성명을 발표하면서 경무대는 시위 군중을 의식하여 “가급적 빨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다하여 데모군중이 알도록 발표하라”고 하였다(김정렬, 『김정렬 회고록』, 을유문화사, 1993, 264쪽). 이 소식이 군중들에게 전해지자 ‘사퇴용의’라는 어구에 불만을 표시하는 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정신이 나간 듯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시위대는 이 대통령의 정식 발표를 듣기 위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조재미 사단장은 “아까운 피를 이 이상 흘리지 말자”고 호소했다.현역일선기자동인 편, 130쪽
오전 10시 50분, 이 대통령의 정식 발표를 기다리던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돌파하려고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이를 보고 조재미 사단장은 직접 경무대에 다녀와서 정식 담화발표 여부를 다짐받아 오겠다며 20분의 시간을 달라고 호소하였다. 조사단장이 간지 2-3분이 지났을까. 학생대표들이 “요구는 관철되었다”고 절규하면서 돌아왔다. 이에 뒤이어 학생대표들이 이 이상 피를 흘리지 말자고 호소하기 시작했으며, 약속은 틀림없으니 해산하자고 역설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순간 시위대는 중앙청 정문을 돌파하고 광장 안으로 밀려들었다.
11시 경, 이윽고 조재미 사단장이 돌아와이 대통령의 특별담화가 틀림없음을 확인했다고 마이크로 방송을 했다. 중앙청담 안에서도군 선무반의 “진정하라”는 마이크 소리가 울려나왔으나 억센 물결처럼 밀려오는 시위대를 저지하지 못하였다. 계엄사령부 스피커에서 이 대통령 사퇴담화가 발표되자 흥분한 군중들은 이중삼중으로 겹친 군대의 경비망을 뚫고 그대로 중앙청 정문으로 밀려들어갔다. 중앙청 앞에 대기 중이던 탱크 위에는 수많은 시위학생들이 새까맣게 뒤덮여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싸우고 싸워서 세운 이 나라……”하고 통일행진곡을 부르며 경축하였다.『동아일보』1960. 4. 27 조3면, 석3면 ; 동아일보 기자, 264쪽 또다시 “이 대통령이 사퇴할 용의가 있다”는 특별담화문을 군선무반과 학생대표들이 큰 소리로 낭독하자 시위대들은 우레와도 같은 박수를 보내며 “데모는 끝났다”고 소리높이 외치면서 물러나기 시작하였다.『조선일보』1960. 4. 26 석3면
11시 30분 경, 경무대를 다녀나온 매카나기 주한 미대사를 실은 세단차가 해산하기 시작하는 중앙청앞 군중 속에 파묻혀 들어왔다. 박수가 터져 나오고, 군중들은 “대한민국 만세!”, “미국 만세!”를 불렀다. 매카나기 대사가탄 차는 환영의 뜻을 표하고자 몰려오는 군중에게 포위되어 길이 막혔으며, 이 때문에 경호 미군 MP 두 사람은 진땀을 빼면서 군중을 헤쳐 나가야 했다. 약 10명의 대학생들도차 선두에 서서 사람의 물결을 헤치면서 매카나기 대사의 차가 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길을 터주었다.『조선일보』1960. 4. 26 석3면 ; 현역일선기자동인 편, 129-131쪽 ; 동아일 보 기자, 265쪽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무리들은 경무대 입구에 마련된 바리케이드 앞에 주저앉아 대통령이 직접 그들 앞에 나타나서 성명해 주기를 요구하였다. 군중의 수는 자꾸만 늘어 오후 2시 경에는 1만 명을 헤아렸다. 경비장교와의 꾸준한 절충에도 그들의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자 몇몇 학생들은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으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오후 4시 15분 경 “이제 우리는 이겼으니 질서유지를 위해 다음 날 학생대표를 면담케 하자”는 대학생 수습반의 설득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동아일보』1960. 4. 27 석3면 ;『조선일보』1960. 4. 27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