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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평화위윈회, ‘민주구국선언 사건’의 유죄판결에 대한 「성명서」 발표
구속된 이들의 신분을 보면 신부, 목사, 전직 대통령, 대통령 후보, 국회의원, 대학교수 등 이 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도급 인물들입니다. 이들이 국가의 현실에 대해 판단하고 언급한 일이 구속까지 당해야 하고, 일 년 동안 재판을 받아야 하고, 이 해 3월 22일에는 사법부 최고 기관인 대법원에서 징역 5년과 3년 이하의 유죄 판결을 최종적으로 언도 받아야 했습니다.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고 국민총화가 강조되고 있는 나라에서 이번 3.1사건의 대법원 언도가 마땅하고 떳떳한 일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유감되고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정의평화위원회는 천주교 주교회의 직속 기구입니다. 주교회의가 75년 2월 28일에 발표한 메시지서 ‘부정부패 사회 부조리 인권유린 등을 고발하는 교회의 발언권은 계속 행사되어야 하고 교회는 정치 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하며 이런 사명을 다하기 위해 주교회의 안에 정의평화위원회가 조직되어 있다’고 공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정의평화위윈회는 그동안 3.1 사건 피고들을 위해 변호인단을 선정했고 여러 차례 기도회도 개최하여 왔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는 변호인과 피고들의 증거 신청이 무더기로 기각되는 바람에 지난해 8월 3일에는 변호인 27명 전원이 변론 임무를 사퇴하는 등 물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법원의 최후 판결에 일말의 기대를 걸면서 인내와 신앙으로 기도회를 열어 왔습니다. 그 결과가 이번 3월 22일의 대법원 유죄판결이었습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국민 대중과 마찬가지로 근년의 우리 국가 현실 안에서 경직된 시국 통제가 완화되고 대화와 화해를 통한 민주 역량의 육성이 구현되기를 갈망하고 기대하였으나 다시 실망의 회답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헬싱키 선언’ 이래 국제적으로 인권 문제는 내정 간섭의 차원을 넘어서 개선되어야 할 인류 공동의 현실적 책무가 되어 있다고 바울로 6세 교황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3.1 사건이 중형으로 매듭지어졌다는 것은 우리의 국가 이익에 커다란 손상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계기에 우리 정의평화위원회는 인권과 정치 질서에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교회의 입장에 따라 정의와 평화를 위한 발언권을 계속 행사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보다 하느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성서의 말씀에 따라 자연법적 질서와 정의를 끝내 우리 사회의 현실적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한 부활을 믿는 이들이며 이 나라의 만여 명 선열 순교자들의 후예입니다. 우리는 오늘 3.1 사건으로 투옥된 사람들의 문제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장을 바라면서 다음의 두 가지 구체적 문제가 해결되고 보장되기를 주장합니다.
그 첫째는 가톨릭 신자이며 시인인 김지하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일이 공명정대하게 판결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김지하 시인의 구속과 인권 문제가 바로 3.1사건 촉발의 한 동기가 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문정현 신부가 지금도 투옥되어 있습니다. 김지하가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가톨릭 신자임을 보증하는 진정서가 최근에도 서구의 각 나라 가톨릭정의평화위원회로부터 한국 법무장관과 우리 정의평화위원회에 접수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로서도 김지하 피고에게 변호인을 제공하고 있는 바 이 재판의 조속하고 공정한 판결을 거듭 촉구하는 바입니다.
둘째로 금년 3.1 절 기도회 때 이 기도회에 참석하려던 전국 각 교구 천주교 사제들이 사복경찰과 기관원들에 의해 연금, 연행, 그 밖의 방법으로 참석을 저지당한 사실의 중대성을 지적하는 바입니다. 이 사태에 관하여 우리 정의평화위원회는 이미 내무부, 법무부, 중앙정보부에 항의문을 보냈는 바 성당에서 거행하는 기도회에 성직자가 참석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중대한 종교 탄압의 사례로서 묵과될 수 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 그와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것은 정의를 위한 우리 교회의 의분심을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가 바라고 인정하는 국가 권력은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즉 그 ‘공권력은 기계적이거나 폭군적인 것이 아니고 모든 국민의 자유와 책임 의식에 바탕을 둔 도덕적 힘이어야 하며 그 힘은 모든 사람과 공동체들이 보다 용이하게 보다 완전하게 자기 완성을 성취하는 공동선에 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올바른 시국관의 기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따를 것입니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성패와 손익의 관념이 개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가져오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1977년 3월 28일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 분류
- 민주화운동 / 인권 1977-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