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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교수 일동, 「우리의 교육지표」 발표

전남대 교수 11명(김두진, 김정수, 김현곤, 명노근, 배영남, 송기숙, 안진오, 이석연, 이방기, 이홍길, 홍승기)이 국민교육헌장으로 대표되는 교육 실패의 원인을 민주주의의 부재에서 찾으며, 교육자로서 양심으로서 가르치고 진실을 배우고 가르치며, 민족역량의 함양을 약속하는 「우리의 교육지표」 성명을 발표하였다. 본래 계획은 성명서에 대한 전국 각 대학교수의 서명을 받아 내외언론에 발표하는 것이었으나, 차질이 생겨 전남대에서만 발표되었다. 11명의 교수 전원은 다음 날 중앙정보부 전남지부로 연행되어 고초를 겪고 교수직에서 해직되었으며, 송기숙 교수는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화여대 이효재 교수가 이와 관련하여 수사 기관에 연행되어 29일까지 조사를 받았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3, 341~343, 358쪽;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Ⅴ), 1987, 1994쪽「우리의 교육지표」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가톨릭출판사, 1996, 261~262쪽.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 한마디로 인간다운 사회는 아직도 우리 현실에서 한갓 꿈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바로 알고 그것을 개선할 힘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을 교육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역시 이 사회에서는 우리 교육자들의 꿈에 머물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마구 누르고, 자손대대로 물려줄 강산을 돈을 위해 함부로 오염시키는 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존중하는 교육은 나날이 찾아보기 어려워가고 있다. 무상의 의무교육은 빈말에 그치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도 과밀교실과 이기적 경쟁으로 몸과 마음을 동시에 해치고 있으며 재수생 문제와 청소년범죄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온갖 시련과 경쟁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는 진실이 외면되기가 일쑤고 소중한 인재가 빈번이 희생되고 교육적 양심이 위축되는 등 안타까운 수난을 거듭하고 있다.
대학인으로서 우리의 양심과 양식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 교육의 실패는 교육계 안팎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자발적 일치를 이룩할 수 있게 하는 민주주의에 우리 교육이 뿌리박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은 바로 그러한 실패를 집약한 본보기인 바, 행정부의 독단적 추진에 의한 그 제정경위 및 선포절차 자체가 민주교육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며 일제 하의 교육칙어를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 강조되고 있는 형태의 애국애족교육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날의 세계역사 속에서 한때 흥하는 듯 하다가 망해 버린 국가주의 교육사상을 짙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부국강병과 낡은 권위주의 문화에서 조상의 빛난 얼을 찾는 것은 잘못이며, 민주주의에 굳건히 바탕을 두지 않은 민족중흥의 구호는 전체주의와 복고주의의 도구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 또 능률과 실질을 숭상한다는 것이 공리주의와 권력에의 순응을 조장하고 정의로운 인간과 사회를 위한 용기를 소홀히 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교육이 선행되지 않은 애국애족교육은 진정한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실천이 결핍된 채 민주주의보다 반공만을 앞세운 나라는 다 공산주의 앞에 패배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이 땅에 인간다운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는 격동하는 국내외의 역사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슬기롭게 생각하고 용기있게 행동할 사명을 띠고 있다. 이에 우리 교육자들은 각자가 현재 처한 위치의 차이나 기타 인생관, 교육관, 사회관의 차이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은 우리의 교육지표에 합의하고 그 실천을 다짐하다.
1. 물질보다 사람을 존중하는 교육, 진실을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교육의 참 현장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학원이 아울러 인간화되고 민주화되어야 한다.
2. 학원의 인간화와 민주화의 첫 걸음으로 교육자 자신이 인간적 양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현실적 정열로써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배워야 한다.
3. 진실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며, 그러한 간섭에 따른 대학인의 희생에 항의한다.
4. 3.1정신과 4.19정신을 충실히 계승전파하며 겨레의 숙원인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민족역량을 함양하는 교육을 한다.
1978년 6월 27일
전남대학교 교수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