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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해직교수협의회, 공동기자회견 개최

8월 24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해직교수협의회가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오늘의 시국은 YH사건을 계기로 중대한 새 국면에 들어섰다”고 밝히며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사회 건설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해직교수협의회는 각기 「1979년 문학인선언」과 「다시 새 학기를 맞으며」 등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1979년 문학인 선언」을 통해 “이 땅에 민족통일, 민주회복, 정의구현, 자유실천을 이룩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을 천명하면서 ① 긴급조치 철폐, 노동권보장 ② 언론탄압 중지 ③ 구속인사 석방 등을 촉구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Ⅳ), 1987, 1604~1606쪽.
해직교수협의회는 성명서 「다시 새 학기를 맞이하면서」로 획기적인 민주화 조치만이 오늘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① 국민교육헌장 및 오늘의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 강화 ② 모든 양심세력과의 유대강화 및 민중의 아픔에 대한 동참 ③ 자주, 평화, 민족통일 저해하는 모든 세력과의 투쟁 계속 등 결의를 천명했다. 이와 관련하여 김병걸, 성내운, 백낙청 교수 등이 연행조사를 받았다.
「다시 새 학기를 맞으면서」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카톨릭출판사, 1996, 540~543쪽.
부당하게 교직에서 추방된 우리 해직교수들은 새 학기를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우리의 결의를 천명하고자 한다. 일찍이 학원생활이 몸에 배였고 아직도 교육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있는 우리들에게 새 학기의 시작은 언제나 새로운 희망과 기대로 가슴이 부푸는 계절이다. 이때에 민주회복과 민족교육의 실현을 추구하는 우리의 열의 역시 한껏 새로워지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오늘의 시국은 전례 없는 민생고의 와중에서 터진 이른바 YH사건을 고비로 중대한 새 국면에 들어섰다고 판단된다. 생존권을 위한 여공들의 평화적 투쟁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경찰에 의한 야당 당사 침입과 국회의원, 언론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폭행, 그 과정에서의 김경숙의 의문의 죽음, 그리고 뒤이어 정부와 여당이 책임 회피와 책임 전가를 위해 취해온 일련의 놀라운 언동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진정한 문제점이 과연 어디 있는가에 대해 국민이 더 이상 모르고 있을래야 있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중대한 고비에서 우리는 본회 부회장 문동환 교수와 회원 이문영 교수와 고은, 안명진, 서경식씨들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동참했다는 사실에 대해 무한한 긍지를 느끼면서 이들과 구속 여공들의 즉각적인 석방은 물론이요 학원과 사회 전반에 걸친 획기적인 민주화 조치가 없이는 이 나라의 앞날이 결코 평탄치 못할 것임을 우리의 지성과 양심을 걸고 단언한다. 당국이 그토록 목마르게 찾고 있는 학원의 안정이라는 것도 허망한 꿈에 그치려니와 국민 총화, 국가 안보 그 어느 것도 공염불로 끝나고 말리라는 사실을 간곡히 일러두는 바이다.
교수로서 우리의 일차적 관심사인 대학의 경우 민주 민족교육의 실현과 민주회복을 외치다가 희생된 학생들의 문제가 예나 이제나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야 옳다. 구속 학생의 전원 석방과 쫓겨난 학생 전원의 복교는 우리의 한결같은 주장이요 가장 핵심되는 요구다. 동시에 출옥 학생들에 대한 탈법적인 현역 입영조치를 포함한 온갖 보복 행위가 즉각 시정되어야 하며 학교 당국과 외부 세력 징계와 퇴학을 일방적으로 단행해온 것도 모자라서 일부 대학에서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총학장 권한으로 휴학까지 명할 수 있게끔 학칙 개정을 실시하는 등의 한심한 작태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해직 교수의 복직 문제는 어디까지나 학원 풍토의 이러한 전면적인 개선의 일면으로써 전원에 대한 무조건 복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원칙이다. 물론 우리는 그 동안 옥고를 치르던 학생들과 동료들 일부가 우리 품에 돌아온 것을 뜨겁게 환영하듯이 의당 교단에 서야 할 사람이 하나라도 더 교단에 서게 된 사실 자체는 우리 민중과 민주 인사들이 힘들어 쟁취한 하나의 전과로서 흐뭇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런 미봉책으로 사태가 해결되리라고 당국이 기대한다면 커다란 착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더욱이 이런 무원칙하고 마지못한 뒷걸음질을 무슨 ‘관용조처' 운운하는 데는 쓴웃음을 금할 길이 없다. 학원 안팎에서의 획기적인 민주회복이 파국을 면할 수 있다는 우리의 충언을 당국은 가벼이 듣지말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까지도 민중 탄압과 인권 유린의 사태가 계속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주지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YH 사건, 해태제과 사건, 안동가톨릭농민회 사건 등을 통해 그 빙산의 일각이 겨우 부각되기 시작한 이 나라 민중의 괴로움과 억울함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교수들이 직접 관련된 사태만 들더라도 우선 이영희 전 한양대 교수, 임영천 전 조선대 교수, 문익환 전 한신대 교수 등이 아직도 옥중에 남아 있다.
특히 재판도 없이 형집행정지 취소라는 행정처분으로 문익환 교수를 재수감하여 아직껏 억류하고 있는 것은 비열하고 수치스러운 작태이며 이영희 교수에게는 최근 교도소 측에서 명분 없는 전향서를 강요하면서 차별적이고 가혹한 처우를 하는 이중의 박해가 가해지기도 했다. 또한 문동환, 이문영 교수의 구속에 앞서 한양대 정창열 교수와 크리스찬 아카데미 교육간사 6명이 그들의 교육활동 내지는 연구활동과 관련하여 구속 기소되었고 경제학자 박현채 교수는 소위 인혁당재건기도 간첩단이라는 깜짝 놀랄 발표에 뒤이어 역시 구속 기소되었다. 두 사건 모두 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결과를 주시하고 있거니와 아카데미 사건에서 정창열 교수를 비롯한 피고인 전원이 법정에서 폭로한 고문 사실만으로도 이 사건은 문명사회의 지탄을 벗어날 수 없다. 더욱이 정 교수의 경우 오직 학문 연구를 위해 책을 읽고 보관하고 동료 연구자에게 빌려 준 것만으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한다면 학문의 자유를 위해서도 절망적인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박현채 교수가 관련된 사건에서도 애초의 당국 발표와 검찰의 공소사실이 이미 너무나 다른데 그 공소사실마저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결정적인 대목들을 모두 부인하고 있어 국민의 의혹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박 교수의 혐의사실은 공소장 그대로라 하더라도 발표 당시의 ‘간첩' 내지 ‘간첩방조’와는 거리가 먼 것이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경제학자가 경제학의 고전을 후배 경제 학도에게 빌려 준 것이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됨을 보고 우리는 무엇보다 이 나라의 학문 풍토를 위해 답답하고 서글픈 마음이 앞서며, 한국 경제의 문제점들을 너무나 정직하게 찔러온 박 교수의 비판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이런 무리한 공소 제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마저 갖게 된다.
동료 교수들의 고난을 열거하는 것은 그들의 이러한 고통조차도 이름 없는 민중들이 겪는 괴로움에 비하면 오히려 작은 것임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러나 지성인이요, 이 사회의 지도적 인사들인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신체적 자유마저 허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복지사회를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며 민주교육을 말하고 문화발전을 논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임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 교육자들을 위시한 모든 양심수들의 즉각적인 석방과 최근 경향 각지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민주인사들에 대한 연행, 구속, 연금 사태의 중지를 요구하면서 새 학기를 맞은 우리의 결의를 다음과 같이 밝히는 바이다.
1.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사회의 건설을 위해 우리는 간급조치의 존속 여부에 관계없이, 그리고 조작된 반공법 사건의 발생 여부에 관계없이 끝까지 투쟁한다.
2. 전남대 〈우리 교육의 지표〉 사건을 유죄로 확정 지은 대법원의 반역사적 판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민교육헌장과 오늘의 현실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비판을 더욱 강화한다.
3. 지성인과 성직자가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양심에 따라 돕는 일을 ‘국내판 통일전선’ 운운하는 어느 여당 측 인사의 몰지각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양심세력과의 유대를 더욱 굳혀나가며 특히 땀 흘려 일하며 생활하는 민중의 아픔에 힘껏 동참한다.
4. 오늘날 민족의 지상명령은 통일이요 이 나라의 국시는 민주주의임을 명심하고 자주, 평화, 민주통일을 저해하는 국내외의 모든 세력들이 민족과 인류의 양심 앞에 사죄하고 물러날 때까지 우리의 열과 성을 다해 싸운다.
해직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