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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여당의 개헌안 변칙통과에 뒤늦은 대응

14일 새벽 2시 50분, 3선개헌안은 야당을 감쪽같이 속이고 국회 제3별관에서 여당 일방적으로 단 25분 만에 전격적으로 변칙처리되었다. 개헌안 표결이 있은 후 국회의사당 건너편 옛날 외무부 자리인 3별관 3층 특별회의실은 뒤집힌 투표함과 명패함 등이 너절했고 뒤늦게 소식이 전해진 야당의원들의 농성장은 통곡과 노호(怒號)로 뒤범벅이었다.
13일 오후 5시 국회본회의가 정회된 후 각 상임위원회별로 대연각 앰배서더 뉴코리아 호텔 등에서 비상대기 중이던 공화당과 정우회 및 일부 무소속의 개헌 찬성의원 122명은 자정을 넘기고 14일 새벽 2시경 반도호텔에 자리잡은 사령탑의 지령에 따라 은밀히 국회 쪽으로 향했다. 이들은 승용차를 반도호텔 앞에 놔두고 모두 삼삼오오 걸어서 의사당 앞을 피해 시청 뒤 어두운 무교동 길을 거쳐 제3별관 후문으로 소리를 죽여가면 들어갔다. 행여 큰길 건너 본회의장 쪽에서 기척을 알아차릴까 가로등 불까지 껐고 의원들의 담배마저 전혀 금지돼 칠흑 같은 어둠속에 싸인 3별관 주변은 200여 명의 ‘사복’이 삼엄한 경비를 폈고 중부소방서 뒤쪽 길도 겹겹이 막고 있었다.
별관 후문 앞에 도착한 의원들은 ‘사복’에 일일이 안내됐고 출입문 안에 들어가서는 국회사무처 직원과 의원비서들이 3층 회의실까지 안내를 했다. 3층 계단과 회의실 문 앞은 여당 당원과 비서들로 이중의 바리케이트가 쳐졌다. 의원들이 회의실에 입장 완료한 것은 2시 10분경이었는데 방안엔 벌써 파란 천으로 가려진 6개의 기표소와 투표함 명패함 등이 마련돼 있었다. 속기사를 비롯한 사무처 직원들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원들이 회의실에 들어설 때까지도 실내에 불이 켜 있지 않아 깜깜한 속을 더듬다 몇몇 의원들은 책상에 무릎을 찧기도 했다. 불이 켜지자 미리 와 있던 이효상 의장이 임시사회석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회의장엔 의석이 2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아 대부분의 의원들은 서서 있었다. 새벽 2시 25분 “제6차 본회의를 개회합니다”라며 이 의장이 방망이를 두들겨 회의는 시작됐다. 이 의장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본회의장 장소변경에 대해 “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농성하고 있어 부득이 여기로 장소를 변경한다”고 설명한 후 공휴일인 일요일 회의 개최에 대해선 “공화당 김택수 의원 외 66명의 본회의 재개 요구가 있어 재개코자 한다”고 간단히 넘겼다. 곧이어 2시 30분께 개헌안의 표결이 선포됐다. 국회사무처 권효섭 의사국장의 호명에 따라 의원들은 미리 마련된 기표소를 통해 기명투표를 했는데 몇몇 의원은 그냥 반공개적으로 기표하기도 했으며 투개표는 불과 10분 만인 2시 44분께 끝났다.
신민회 의원들에 대해서는 호명도 하지 않았고, 개표가 끝난 뒤 야당 측에게 통고할지의 여부로 한동안 머뭇거리기도 했는데, 이 의장은 사무처 직원으로 하여금 이 사실을 통고토록 했다. 여러 의원들은 밖에서 인기척이 나자 야당의원들이 몰려오는 줄 알고 출입문을 가로막기도 했다. 이 의장은 개표 10분 만인 2시 50분 떨리는 목소리로 개헌안 가결을 선포한 후 곧이어 국민투표법안을 상정, 김용진 의원의 심사보고를 듣고 질의와 토론을 생략한 채 통과시켰는데 김 의원은 심사보고를 하면서 연방 출입문 쪽을 곁눈질해 보기 바빴다. 의원들은 곧이어 퇴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시간은 2시 53분경이었다.
맨 처음 7~8명의 경호원들이 사회자인 이효상 의장을 얼싸안다시피하고 나왔고 윤치영 당 의장 서리·오치성 사무총장 등이 뒤를 따랐다. 대부분 고개를 숙인 채 종종걸음을 했다. 이때 3별관의 후문과 정문 앞엔 수많은 ‘사복’이 겹겹이 서서 몰려든 사진기자들의 취재를 끈덕지게 가로막고 카메라를 나꿔채기도 했다. 카메라 플래시를 피해 고개를 숙이고 오 의원을 부축하고 나오던 청년이 송호창 사진기자를 서너 차례 치고 밀치는 등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의원들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피하다 못해 마지막엔 별관 정문을 열고 빠져나갔는데 차가 오지 않아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보였다. 회의장을 나오는 여당의원들을 향해 김상현 의원은 “나 김상현이다. 이 강도들아, 강도들” 하고 고함치며 몸부림치다 3층 회의실에 뛰어들어 기표소와 명패함 등을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면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울부짖었다.
이날 새벽 2시 40분 조금 지나 신민회 의원들이 농성중인 국회 본회의장에 공화당 의원들이 반도호텔을 출발, 국회 쪽으로 향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이때 대부분의 의원들은 단상과 단하 이곳저곳에 이부자리를 깔고 잠자고 있었는데 깨어있던 김영삼 원내총무는 즉각 의원들에게 비상을 걸어 본회의장 출입문에 의자를 높이 쌓아올려 봉쇄하는 등 임전태세를 갖췄다. 여당 측이 본회의장으로 오는 줄만 알고 주섬주섬 옷을 입은 의원들은 “전쟁도 새벽에는 쉬는데 이건 베트콩보다 더하다”고 투덜대며 대기 태세로 들어갔다. 조금 뒤 국회 제3별관에서 개헌안이 벼락치기로 통과됐다는 소식이 연달아 날아들자 모두 아연실색, 젊은 김상현 의원은 쏜살같이 달려갔다. 김 의원이 제3별관 후문에 다다른 무렵인 2시 55분경 ‘찬성의원’들은 하나 둘 빠져나오고 있었다.
한편 본회의장에서 변칙처리 소식을 확인한 신민회 의원들은 격노, “이 따위 국회는 이제 있으나마나 한 것”이라고 소리치며 의장석을 뒤집어엎고 사회봉과 마이크를 마구 부쉈으며 의원들 명패도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김영삼 총무는 목을 놓아 울었고 고흥문 의원은 “이제 망하는구나. 망하려면 곱게 망하지”하고 개탄했으며 신민회 의원들과 함께 농성하던 양순직·예춘호 의원도 “정말 환멸을 느낀다”고 흐느끼는가 하면 제3별관에 뛰어갔다온 김상현 의원도 소리내어 울었다. 본회의장은 야당 의원들의 통곡과 노호와 탄식으로 뒤덮였다. 야당의 분노는 오래도록 그치지 않아 긴급 의원총회를 마친 후인 4시 50분 김 총무를 비롯, 김형일·김수한·이기택 의원 등이 의장실에 뛰어 들어가 집기와 책상 등을 마구 때려 부쉈다.
이날 새벽 기습작전을 짠 공화당은 처음부터 연막전술로 속임수를 썼다. 13일 오후 5시 본회의가 정회된 후 밤 10시에 속개된다는 설이었으나 본회의는 자정을 넘기면서도 열리지 않았다. 이때 의장실을 나와 공관으로 간다고 밝히면서 이효상 의장은 “자정이 넘었기 때문에 본회의가 자동 유회됐다”고 말했으며 권효섭 의사국장도 “본회의의 사전 결의 없이 일요일에 회의를 못 연다”는 견해를 밝혀 신민회 측은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가 보다”하고 일단 안심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공화당 측은 의장실에서 김택수 총무와 김재순 대변인 등이 모여 권 의사국장과 함께 일요일 본회의 개회방법을 협의, 국회법 8조 2항의 휴회중 재개요구 규정을 원용토록 방침을 세웠었다. 신민회 측은 공화당의 기습 변칙을 경계하며 밤 12시 반이 넘자 집에서 가져온 이부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다.
새벽 2시경 공화당 김 대변인이 본회의장에 홀로 나타났는데 마침 잠을 안자고 있던 김영삼·조윤형 의원 등이 “뭐냐, 나가라 나가”하며 소리소리 질러 그를 당황케 했다. 김 대변인은 제3별관에서의 변칙처리를 앞두고 연락관계로 국회에 들러 농성장 분위기도 살피고 갔다. 2시 반경엔 신민회 김 총무가 다시 “이 안에 정보원이나 여당의원 비서가 있으면 즉각 나가라”면서 농성장을 정리했다. 이때 여당의원 비서 2명이 쫓겨났다는데 이 일이 있은 후 10여 분 만에 공화당이 국회로 출발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던 것이다.『동아일보』 1969.9.15. 3면, 『매일신문』 1969.9.16. 1면, 『한국일보』 1969.9.15.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