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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15인 「시국선언」 발표

11월 5일 오전 11시 서울 YMCA 회관의 1층 다방에서는 천관우의 사회로 11명의 재야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한 모임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서 김재준 목사가 「시국선언」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낭독하였다. 모임이 시작되고 10여 분만에 경찰이 들이닥쳐 모임을 해산시키고 참가자들 중 9명을 연행했다가 당일 풀어주었다. 간단한 사건이었지만 유신체제에 대한 지식인들의 저항의 출발을 알리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Ⅰ』, 1987, 280~281쪽 11.5 지식인의 「시국선언」 발표다양한 운동 세력의 활발한 움직임이 한데 어우러져 연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반유신 연합운동은 합법투쟁의 일환으로서 개헌청원 서명운동의 형태로 집약되어 갔다. 학생, 언론인, 기독교인들의 활발한 투쟁이 고조되는 상황 속에서 ‘민주수호국민협의회’는 15인의 연서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인권과 이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체제 재건을 위해 전 국민이 각자의 장에서 궐기 투쟁할 것”을 호소했다.
1973년 11월 5일 서울 YWCA 1층 식당에서 낭독된 「시국선언」에는 15인의 지도적 지식인 강기철, 계훈제, 김숭경, 김재준, 김지하, 박삼세, 법정, 이재오, 이호철, 정수일, 조향록, 지학순, 천관우, 함석헌, 홍남순 등이 참가했다. 이들은 선언에서 ‘강요된 침묵’에 항거하고, “인권과 민권을 기본으로 했던 민주체제 재건을 위해 전 국민이 각자의 장에서 궐기 투쟁할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현 정권의 독재정치는 국내외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국민을 처해 놓았다. 권력에 의한 법치원칙 파괴, 정보정치로 인한 불신풍조, 특권층의 부정부패, 빈부격차 극심, 집회·언론·학원·종교의 자유 억압, 3권 장악에 의한 독재체제 구축을 규탄한다”면서 유신체제를 정면 비판하였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도서출판 선인, 2006, 249쪽
(지식인 15인) 시국 선언1973.11.5.현 정권의 독재정치, 공포정치로 국민의 양심과 일상생활은 더없이 위축되고 우방 각국의 신뢰와 친선관계는 극도로 실추되어 대한민국은 내외로 최악의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최근 일년 남짓 비판적인 의견을 완전히 봉쇄당해 온 우리는 이제 강요된 침묵에도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민주국민의 당연한 권리로 이 자리에서 쾌히 우리의 의사를 발표하는 바이다.
그렇지 않아도 권력에 의한 법치원칙 파괴, 정보정치로 말미암은 공포와 불신의 풍조, 특권층의 극심한 부정부패, 국민 간의 첨예화한 생활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거듭되어 오던 터에 작년 10월 계엄 이후의 비정상적인 사태 진전은 급기야 집회, 언론, 학원, 종교의 마지막 자유의 숨기를 누르고 사법과 입법을 완전히 행정부의 장중(掌中)에서 좌우하는 독재의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우리의 입국의 기초인 민주주의는 공공연하게 또 뿌리째 무시되기에 이르렀다. 뿐만이 아니라 이 지난(至難)의 상황 속에서도 감연(敢然)히 자유와 사회정의를 절규한 젊은 학도들에게까지 정당한 그들의 주장을 부당한 듯이 공언하면서 가차 없는 탄압을 가하였다.
또한 이 수년래로 동아시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진행되어 만주·통일·독립을 지향하는 우리민족의 진로는 냉엄한 일대 관운에 서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은 도리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나아가 나라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련의 처사마저 서슴지 않았다. 인권과 민권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기치 아래 민족의 총역량을 집결하는 것만이 끝내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야 할 우리 민중의 간절한 소망이요 당면한 내외의 이 난국을 타개하는 우리나라 단 하나의 활로이다.
현 정권은 이 중대한 현실을 직시하여 무엇보다도 민주적 제(諸)질서를 시급히 회복하라. 그것은 결코 어떤 미봉(彌縫)으로 될 일이 아니요, 민주체제를 근저에서 재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면 어느 정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존립의 전도조차 낙관하기 어렵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바이다.
이러한 파국으로의 길은 국민 누구냐가 좌시하지 못할 일이며, 따라서 우리의 소망이요, 활로인 민주주의의 철저한 회복을 위해 우리 모든 국민이 각자의 처소에서 전력을 다해 궐기, 투쟁할 것임을 굳게 기약하는 바이다.
1973년 11월 5일
- 서명자, 가나다순 -
강기철(민주수호국민협의회) 계훈제(국민수호협의회) 김재준(국민수호협의회) 김숭경(민주수호천안협의회) 김지하(시인) 박삼세(민주수호대구협의회) 법정(불교) 이재오(민주수호청년협의회) 이호철(소설가) 정수일(민주수호청년협의회) 조향록(기독교) 지학순(천주교) 천관우(민주수호국민협의회) 함석헌(민주수호국민협의회) 홍남순(민주수호광주협의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Ⅰ』, 1987, 280~2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