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 울릉도거점 통일혁명당 경북위원회 사건(울릉도거점 간첩단사건) 발표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건은 북괴가 남한적화혁명을 목적으로 그들의 공작원을 직접 남파시키거나 일본을 통해 우회침투시켜 청년, 학생, 지식인, 종교인, 노동자, 농민 및 군 간부를 포섭하여 지하망 조직, 통일전선 형성, 경제토대 구축 등 방법으로 소위 혁명역량을 축적했다가, 남한 내에 정치, 경제, 사회불안과 혼란을 조성, 소위 인민민주주의 대남 혁명전략에 입각하여 현 정부전복을 획책해 온 대표적인 간첩단 사건”이라고 밝혔다. 신부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북괴의 평화통일 주장은 구호에 불과하고 그들의 대남 적화혁명전략에는 하등의 변함이 없이 오히려 날이 갈수록 간첩활동은 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 여러분에게 알리면서 보다 투철한 승공이념의 구현에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중앙정보부 발표에 따르면 수사결과, 울릉고 출신 간첩 전영관, 김용득, 전영황 일당은 1962년 12월부터 1974년 2월까지 울릉도를 전진기지로 구축, 북한을 왕래했고 3,400여만 원의 공작금으로 인쇄소, 기원, 선화매매상 등의 위장업체와 어선을 가장한 공작 선박 등을 구입하는 한편,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30여 명 규모의 지하망을 구축하고 지식인과 고급공무원 등 10여 명으로 서클 ‘아생회(我生會)’를 조직하는 한편 현역 및 예비역 장교 20여 명으로 ‘동지회’를 조직, 지식층과 군부 침투 토대구축을 기도했다. 또 1963년 4월부터 1971년 10월까지 10여 회에 걸쳐 일본으로부터 내왕하면서, 국내 고정간첩망 부식과 통일전선 형성을 획책해온 재일간첩 이좌영에게 포섭된 전북대 교수 이성희, 공화당 부안지구 부위원장 최규식, 동진안지구 조직부장 유창렬, 신민당 진안지구 조직부장 이한식 및 고창 농촌지도원 김영권 등 일당은 1965년 10월부터 1974년 2월까지 유학 또는 농업기술 연수 명목으로 일본에 체류하면서 북한을 왕래하거나 재일북한공작조직으로 일본에 체류하면서 북한을 왕래하거나 재일북한공작조직으로부터 간첩교육을 받고 국내에 잠입, 전북 일대를 중심으로 ‘위친계’, ‘농사개량구락부’ 등 서클을 조직, 동조자 규합 토대를 구축하는 한편 유사시 교수 및 학생 동원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대학총장 운동을 전개하고 군부 조직을 목적으로 모 장군 포섭을 시도하는 등 간첩활동을 자행해왔다.
중앙정보부는 특히 간첩사건을 발표하면서 지난 1973년 11월 북한이 무전기 2대와 함께 간첩 전영관 일당이 설정한 울진 해안 무인포스트에 새로이 매몰했던 북괴의 「당면공작방향」이라는 지령문의 내용을 공개하고, 북한은 이들 간첩에게 현 정권에 대한 불평불만이 있는 중견장교들을 포섭하거나 매수 장악하여 수도방위사령부와 서울 주변 중요부대에 집중 침투시키는 한편 대대, 연대, 사단 등을 완전 장악하라고 지령했다고 밝혔다. 또 양심적인 지식인, 정계, 애국적 종교인 등 중산층 인물들을 포섭, 그들로 하여금 반외세, 반부패, ‘두 개의 한국’ 반대, 평화통일 동 구호 하에 민주주의전선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토록 하라고 지령했으며, 또한 20대 청년들을 핵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청년학생들의 반정부 투쟁운동을 전국에 확산토록 선동하고 4.19와 같은 혼란사태를 조성케 하여 군부의 동조를 얻어 현 정부를 전복케 하라고 지령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중앙정보부는 지금까지 판명된 47명 중 간첩 또는 방조 활동을 해 온 전영관 등 30명은 구속하고, 죄증이 경미한 남은 관련자 전순봉 등 17명은 혈연관계와 자녀문제 등을 정상참작하여 입건 후 불구속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