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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 고정간첩 3개 망 5명 검거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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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는 18일 상오 일본 및 우리나라 남해안을 거점으로 학원과 종교계 및 농어촌에 침투, 통일전선 형성을 꾀해온 북한고정간첩 3개 망 5명을 서울목포에서 각각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3개 간첩망 중 재일조총련을 거쳐 침투한 2개 망은 종교계와 학원에 침투, ▲반정부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학원의 자유화·민주화 운동을 조직화, 반정부 반체제운동으로 유도하며 ▲종교인들을 선동, 김일성의 평화통일 방안을 지지토록 하는 임무를 띠고 있으며, 나머지 1개 망은 전남 임자도 등 도서지방과 농어촌지역에 혁명기지를 구축할 목적으로 지하조직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들의 범죄사실은 다음과 같다.
◇김영작(34·서울 관악구 상도동 214의 203·일본 국제기독교대학 조교수·법학 박사)=1963년 YMCA재단 장학금으로 일본 국제기독교대학에 유학, 1968년 동경대학원 재학 중 북한의 재일지도원 박상진에게 포섭돼 입북, 간첩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입당, 종교계와 학원에 침투, 지하망을 조직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학생데모를 선동, 사회혼란을 조성해 유사시에 동조세력을 규합, 봉기하라는 지령과 공작금 일화 1백만 엔, 난수표 1조 등을 받아 지난 1970년 일본을 거쳐 입국했다. 그 후 종교계 현황 등을 파악하는 한편 학원공작 대상 학교로 서울대학교를 선정, 그동안의 활동상황을 재일지도원 박상진에게 보고했다. 1971년 여권을 갱신한다는 구실로 다시 입국, 8대 국회의원 총선거 시의 국내 정당동향과 학생동태를 수집하면서 서울대 교수로 침투하려고 시도했다. 유신체제에 대한 지식층 및 종교계의 반응을 수집 보고하고 포섭대상자 9명(학계 2명, 언론계 2명, 종교계 2명 등)에 대한 포섭활동을 펴는 한편 종교인 학생을 대상으로 반정부 통일전선 형성을 시도했다.
◇고병택(37·일본 해외기술자연수협회 관서센터 직원·일본 대판부 취전시 진운태 31의 3)=지난 1957년 제주 오현고교 졸업 후 일본에 밀항, 1961년부터 조총련의 지령으로 유학동맹 하기공작대원으로 민단조직 와해공작을 폈다. 1964년 북한공작원 서선웅에 의해 대남공작원으로 포섭돼 노동당에 입당, 1974년 모국방문을 가장, 입국하여 각 산업체에서 활약 중인 일본에서 사귄 연수생들과 접촉, 공작을 폈다.
◇이봉용(37·한국전력 급전과장·서울 동대문구 청량2동 203의 100)=1968년 9월 일본 삼릉상사 초청으로 기술연수차 도일, 오현고 동창인 간첩 고병택에게 포섭되어 1968년 10월 조총련 지도원에게 ▲한국전력의 사정 ▲경부고속도로 건설상·활용 ▲교육제도 국방예산 등 국가기밀을 누설했으며 1968년 12월 귀국 후 고에게 7.4 공동성명 및 남북회담 개최 상황, 민심동향 등을 파악, 서신으로 보고했다.
◇정태문(40·선원·전남 목포 시유달동 1)=1967년 3월 남파간첩 최성도에게 포섭되어 최의 연락망원으로 활동, 1967년 3월, 1969년 7월, 1971년 8월 등 3차례에 걸쳐 입북, 간첩교육을 받고 공작금 88만 원을 받았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임자도 어협조합장 추방데모 상황, 임자도 등 도서해안지대 군경초소 위치, 경비상황을 수집 보고했고 지령사항을 수행하기 위해 암약했다.
◇강대년(40·상업·전남 신안군 임자면 재원리)=1971년 3월 정태문에게 포섭되어 1971년 8월 월북, 노동당에 입당, 간첩교육을 받고 ▲해상 접선장소 물색 ▲함정 경비상황 등 수집 지령을 받고 무전기 1대, 암호문서 1조 등을 받고 암약했다. 『조선일보』 1974.04.19. 7면; 『경향신문』 1974.04.18. 7면; 『동아일보』 1974.04.18. 7면; 『매일경제』 1974.04.18. 7면; 『중앙일보』 1974.04.18. 7면
분류
정치·국제관계 / 남북관계 197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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