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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안보국민협의회 발족

38개 사회단체 대표들이 서울 종로구 인의동 향우회관에 모여 ‘총력안보국민협의회’를 발족시켰다. 이들은 “현재 상황이 전시비상체제 편성을 서둘러야 할 시기라는 점을 깨달아 총력안보국민협의회 결성을 내외에 선포한다”면서 “앞으로 어떤 국론분열적 언동도 민족의 이름으로 그 책임을 묻고 주시할 것이며, 배타적 안보관이나 자조적인 패배주의를 몰아내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은 ▲반공전사답게 행동한다, ▲조국수호가 모든 가치에 우선함을 실증한다, ▲용공분자의 발본색원에 앞장선다, ▲안보태세 확립에 장애가 되는 일체의 퇴폐풍조를 추방한다, ▲유사시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출전할 것을 천명한다는 등 5개 항의 행동강령을 채택했다. 5월 10일 서울특별시협의회 등 11개 시도협의회가 발족했다. 『조선일보』 1975.05.09. 7면 안보궐기대회 광풍 국내에서 땅굴이 발견됐고, 국외에선 크메르와 베트남이 연이어 공산화됐다. 유신체제에 대한 거센 저항에 직면했던 박정희 정권은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공포분위기를 조성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안보궐기대회였다. 안보궐기대회는 협의회가 공식출범하기 전인 4월부터 이미 일부 열리긴 했지만, 5월 들어서는 전국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확산됐다. 행사에 동원된 인원이 적게는 수백 명에서 수천, 수만 명이 예사였고, 심지어 100만 명을 훌쩍 넘긴 경우도 있었다. 대회의 명칭도 반공궐기대회, 승공궐기대회, 승공단합대회 등으로 다양했다.
먼저 ‘종교계’의 경우,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가 4월 21일 시국선언을 통해 전국기독교 반공궐기대회를 제창하면서 활발한 승공운동을 전개할 것을 촉구했다. 대한구국선교단(총재 최태민·58)이 주최한 구국기도대성회가 5월 4일 마포구 동교동 중앙교회에서 박근혜 등 1,000여 명의 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하고 국가조찬기도회를 시작한 김준곤 목사도 같은 날 반공구국기독학생기도회 열고 “공산당은 악한 박테리아 같아서 정의, 자유, 민족해방 등 인기 있는 구호 속에서 서식하며 적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계는 5월 5일 한국불교협의회가 ‘호국결의문’을 채택했고 이후 태고종이 ‘총화안보기원 영산수륙대법회’를 열었다. 조계종도 6일 조계종 총무원 회의실에서 종단대표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불교지도자 호국안보대회를 가졌다.
‘학교’는 거의 매일 궐기대회를 열었다. 대학부터 심지어 국민학교까지 대규모로 동원됐다. 다음은 5월 1~10일 사이에 개최된 행사 중에서 신문을 통해 확인된 현황이다.
▲대학 : 서울대는 14개 단과대학과 3개 대학원 교직원·학생 5,000여 명이 9일 오전 10시 30분 관악캠퍼스 대학본부 앞 잔디밭 광장에서 안보궐기대회를 개최했으며 한심석 총장은 대회사를 통해 총력안보만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부분 휴강에 들어간 연세대는 이날 오전 10시 40분 대학 노천극장에서 이우주 총장서리를 비롯해 교직원 700여 명과 학생 1,000명 등 1,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안보궐기대회를 가지고 최정훈 교무처장의 「교수단성명서」, 상경대 학생회장 김영일(23·경영과 4) 등 학생 4명의 「국가비상사태에 처한 시국성명서」,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 「북괴 집단에 보내는 경고문」 등을 채택한 데 이어 학훈단 후보생들은 김일성 화형식을 가졌다. 휴교 중이던 고려대도 학생 4,000여 명이 이날 오전 10시 성북구 안암동 이공대야구장에서 반공궐기대회를 열고 “8,000 고대인은 총력안보의 국민적 대열에 참여,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등 5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대회에서 정영휘(전기과 4) 등 3명은 총력안보, 면학 등을 혈서로 썼다. 중앙대와 산하 초·중·고학생 1만여 명도 중대부고 운동장에 모여 안보단합대회를 가졌으며, 건국대 학생 1,000여 명, 단국대 교수·학생 2,500명, 경기대 학생 1,000명, 덕성여대 800명도 이날 각기 교정에 모여 반공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밖에도 날짜는 다르나 한양대(2,000명), 부산대(1,500명), 동아대(1,500명), 충남대(2,000명), 청주대(600명), 조선대와 산하 6개 중·고교(2만1,300명), 전북대(4,000명), 전주교육대(400명) 등에서도 대규모 궐기대회가 개최됐다.
▲중·고교 : 대회가 열린 학교와 참가인원은 다음과 같다. 여의도고 2,400명, 이화여고 3,800명, 무학여고 2,000명. 동덕여고 1,800명, 수도여사대부고 1,500명, 경신고교 1,500명, 숭문고 1,450명, 신진공고 1,350명, 동서울상고 1200명, 인천공고 3,000명, 인천 선인학원 산하 2개 공전·4개 고교 10,000명, 부산여고 1,800명, 부산상고 1,800명, 부산여상 2,300명, 부산동중·고교 3,600명, 마산제일여고 1,000명, 전남 순천고 1,800명, 순천공고 2,000명, 경북 포항공고 500명, 포항수산고 500명, 대동고 1,000명 등이다.
▲국민학교 : 부산 동일국민학교 4,000·수정국민학교 3,700명, 경남 진주 예하국민학교 600명 등이다.
‘경제계’는 공기업 사기업을 가리지 않고 연일 대회를 개최했다. 울산 현대조선 1만6,000명, 현대자동차 1,800명, 대한금융단 총력안보단합대회 7,000명, 삼성전자 3,000명, 한일합섬 수원공장 600명, 전국섬유노조 부산지부 10,000명, 부산 부두노조 7,000명, 조선공사 3,500명, 강원 석탄공사 장성 및 함백광업소 5,000명, 한진그룹 1,000명, 대한중기공업 1,500명, 한국슬레트 1,500명, 강원 묵호 노동단체 및 여성단체 2,000명, 대한광업진흥공사 600명, 한국관광협회 전국관광업자대표 300명, OB맥주 300명, 농협(서울) 1,500명, 주택공사 1,000명, 무역진흥공사 300명, 안양농업진흥공사 2,000명, 동대문시장상인 1,500명, 경기부두노조 인천지부 2,600명 등이다.
‘지역별’로도 대규모 행사가 개최돼, 부산에서는 8일 오전 10시 부산공설운동장에서 50여만 명이 모인 가운데 시민안보궐기대회를 열고 “북괴침략의 본성이 될 수 있는 부조리를 없애고 총화안보체제를 갖추자”는 등 3개 항의 반공행동 강령을 채택했으며 현장에서 방위성금 모금운동도 벌였다. 울산시민 10만여 명도 9일 울산공설운동장에서 안보궐기대회를 열고 울산여객 등 26개 기업체가 1억1,750여만 원의 방위성금을 모금, 국방부에 전달했다. 대전에서는 대전역에 15만여 명이 모여 범도민궐기대회를 개최하고 ‘총화단결로 북괴 도발을 분쇄하자’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전북도사회단체협의회 주최 전도민멸공궐기대회에도 10만여 명이 참여했고, 천안 3만5,000명, 제천 1만2,000명, 충주·중원 3만 명 등이다. 이같은 열기는 5월 10일 여의도 5·16광장에서 시민 140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서울시민 총력안보궐기대회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일본 오사카에서도 21일 재일민단 3만 명이 집결해 궐기대회를 열고 김일성의 통일정책을 규탄했다.
안보궐기대회를 비판한 국회의원이 의원신분을 잃는 일도 벌어졌다. 신민당 김옥선(서천) 의원은 1975년 10월 8일 정기국회 회기 중 대정부질문을 통해 이같은 관제시국행사를 비판했다. 김옥선은 “전쟁심리 조성은 영구집권으로 가는 방편”이라고 지적하고, 베트남 공산화 이후 안보행사 등으로 이같은 분위기를 선동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나 발언시작 몇 분 만에 공화당 및 유신회 의원들의 야유로 그의 질문은 중단됐고, 정회가 선포된 뒤 일부 발언은 국회속기록에서도 삭제되었다. 국회의장인 정일권이 김옥선 발언은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국회의 품위를 손상하는 이적행위라며 징계에 회부해 제명을 결의했다. 김옥선은 여야대치가 계속되자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공민권을 정지당해 10년간 정계에 복귀하지 못했다. 『조선일보』 1975.05.01~05.11; 『중앙일보』 1975.05.01~05.10. 7면; 『경향신문』 1975.05.21. 1면; 『부산일보』 1975.05.01~10. 7면 『대전일보』 2012.05.18.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005383); 『불교신문』 2019.02.26.(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107) ;『교회연합신보』, 1975.05.11.(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dagef&logNo=220010568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