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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 ‘4월혁명 제3선언문’ 낭독 “지성의 역사는 비판과 창조의 역사다”

19일 하오, 서울대 학생들은 4·19 2주년 기념식에서 제3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제1선언은 4·19 당시에, 제2선언은 1961년 4·19 때 낭독되었다.『경향신문』 1962.4.19 석1면 서울대학교 4월혁명 제3선언문 오늘 우리는 영광과 감격을 지닌 채 그날의 광장에 다시 모였다. 피 끓는 애국심과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이상과 현실의 양단에서 통곡하였고 맨주먹으로 정의와 양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 탈색된 민주주의를 피로 채색하는 그날의 보람을 느끼며 오늘에 선다.
발전하는 세계사와 격리 밀폐된 긴 역사 속에서 언제나 타율적으로 지배되었던 슬픈 목가의 반만 년,가난과 굴종, 비굴과 아첨, 그리고 은둔만이 강요되었던 체념의 풍토 한반도, 식민지의 속민으로서 인내와 복종, 무저항의 미덕을 배웠고 행복한 미래의 꿈을 단념한 민족사의 금세기에 외세의 이익조정에 따라 반사적으로 얻어진 우연한 행복은 남북을 타율적으로 양대 이데올로기에 복종시켰다.
평화를 동경하던 백의민족은 양대 세력의 정치적 이해의 상품으로서 국제적으로 전시된 때부터 남북은 무연성을 주장하였고 민족의 비극은 잉태되었다. 새로운 결단으로 수립된 신생 대한민국 제1공화국은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44.5%의 새로운 다수결의 악랄한 민주주의를 고집하였고 반공이라는 미명하에 초국가적 인간의 생존권적 기본권마저 박탈하여 새로운 신화 독재정치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부정을 다시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날의 숨 가쁜 역사의 궤도 위에 우리는 서 있었다. 인내와 무기력의 역사를 단연 거부하고 소박한 정의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던 약속이 분화구를 찾아 뜨거운 용암을 마구 불어넣던 아! 그날 4월 19일 피의 날아! 2년 전 역사 속에서 배태된 슬픔을 못 찾아 양심이 전율하며 통곡하던 혈투의 그날! 파란 하늘에 수많은 동공들이 못 박아 논 그날의 약속 위에 동지들의 넋은 하나의 석상으로 서 있다.
친애하는 벗들아, 감격의 그날! 피 흘려 찾은 승리의 환성과 정다운 친구의 죽음을 안고 흐느끼던 그날의 약속을 잊지 말자고, 오늘 우리는 여기에 다시 모인 것이다.
같이 몸부림치던 동지들아! 그 이후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 역사는 새로운 장을 서하고 귀착점을 향해 질주하건만 시기한 너의 얼굴은 누가 조각한 것이냐!
정오의 태양이 작열하던 날! 보도를 피로 적셨던 그날의 총알과 최루탄 속에서 호곡하던 가로수도 그 진상을 목도했다. 천추만대에 물려줄 핏자국과 그 피의 증인들은 어디 가고 오늘 4월의 하늘은 이렇게 푸르기만 한거냐!
이제 우리는 지난날의 슬픔을 반추하면서 무력한 역사의 악순환을 거부한다. 지성의 역사는 비판과 반항의 역사요, 창조의 역사다. 반항 있는 곳에 지양이 있고 창조 있는 곳에 발전과 비약이 약동한다. 4·19 혁명이 우리 역사요 창조였다면 오늘 우리의 침묵은 무엇을 약속하는 거냐? 침묵은 그것에만 머무를 수없다. 더 고양된 창조의 준비로서 침묵은 의미가 없다. 양심의 침묵은 대학의 지성과 함께 우리 역사를 지키는 제2의 보루다. 불모의 풍토에 자란 4월의 나무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보람찬 열매 맺으리니 우리의 지성이 그 성스러운 열매를 맺는 축복과 그날그날의 창조에 오늘 지성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제 4월의 하늘은 푸르러 가는데 4월에 진 벗의 영령이 주시하는 이 자리에 우리는 선다. 우리는 상흔의 역사를 지키는 정의의 변호자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오늘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다시 한 번 자부한다.
1962년 4월 19일『경향신문』 1962.4.19 석1면, 김삼웅 편, 『민족, 민주, 민중선언』, 일월서각, 1984, 27~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