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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요대학, 일단 정부태도 주시하며 행동 보류

3·24 학생시위에 앞장섰던 서울대, 고대, 연대 학생들은 김종필의 귀국과 박정희 대통령의 학생대표 면담약속 등 그들의 요구가 일부 수락되자 일단 행동을 보류하고 정부의 태도를 주시하고있다.3·24시위는 한일협정반대투쟁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김종필의 소환과 학생대표들의 박 대통령 면담으로 데모가 일시 중단된 것은 당시 학생들의 의도가 한일회담 자체의 거부나 박 정권의 타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411쪽) 그러나 3·24시위는 첫째,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이른바 3월 타결, 4월 조인, 5월 비준이라는 지배권력의 한일회담 일정을 유보시켰다는 점, 둘째, 이를 통해 박 정권의 반민족적인 성격을 대중이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는 점, 셋째, 소위 군정의 2인자이며 당시 권력의 핵에 있던 김종필이 한일회담의 막후 교섭자로 반대운동의 주요 공격대상이 됨으로써 반김종필계에게 공세의 발판을 제공하여 지배권력 내 박정희-김종필 라인의 균열을 조장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이광일, 「한일회담 반대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일협정을 다시 본다』, 아세아문화사, 1995, 105쪽) 구자신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이번 데모로 학생들의 의사가 만족스럽지는 못하나 정부에 반영된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메모의 즉각 공개를 강조하며, 청구권 3억 불은“한심한 액수”라며 “이 메모 속에 정치자금이나 독도문제가 포함되었는지 누가 아느냐”고 비밀외교를 공격했다.
서울대생들은 앞으로의 데모계획을 “정부의 태도 여하에 따라 신축성 있는 움직임으로 나타내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30일 상오 11시 문리대 학생회의실에서 각 단과대 학생회장 회의를 열고 “행동을 상실한 지성도, 지성이 결핍된 행동도 모두 거부한다”고 선언, 아래의 결의사항이 72시간 내에 관철되지 않을 경우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① 호혜평등에 입각한 한일국교정상화에는 이의가 없다. 굴욕적 외교는 그러나 반대다. 한일회담을 중지하고 대표단을 소환하라. ② 한일회담 진행과정을 정부는 밝혀라. ③ 정부는 해군력을 동원해서라도 평화선을 사수하라. ④ 국교정상화 이전에 침투한 제국주의적 일본자본을 축출하라.
연세대 학생들의 경우 총학생회장 안성혁 군은 30일 상오 “앞으로 정부가 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하면 다시 데모를 벌이고 극한투쟁도 사양치 않을 것”이라고 강경히 말했다.
연대생들은 28일 하오 교내 23개 연구학회 실무위원장단이 모여 연합학회를 결성했는데 한일회담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연구발표회를 가질 것이며 “주목할 만한 행동”을 하겠다고 한 실무위원장은 말하고 있다.
연세대 학생들은 28일 연합학회를 결성한 후 30일 상오에는 정치학회, 법학회, 행정학회의 실무회장단을 중심으로 ‘반민족외교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김종필 씨의 귀국과 더불어 한일회담의 흑막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경향신문』 1964.3.30 석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