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정오경 서울의 중앙고생 1,500명은 교정에 모여 김종필 씨의 도쿄 발언 중 시위참가학생이 20%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박, “20%만이 아니다. 1백만 학도여 궐기하자”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땅속의 선열은 눈 떠 통곡한다”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굴욕외교 반대”, “일본의 경제침투를 막자”, “김종필 씨가 데모 참가학생이 전체학생의 20%밖에 안 된다고 말한 것은 부당하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시청 앞 뉴코리아 호텔 앞을 행진하는 동안 “경제침략은 정치적 침략이다”, “일본상사는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봉선화’, ‘반달’ 등의 노래를 부르며 시위했다. 이들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선언문을 낭독했고 중앙청 앞에 몰려가 바리케이드 및 무장경관과 대치했다.
30일 상오 10시쯤 대구에서는 중앙파출소 앞길에서 성균관대생 홍성기가 “4·19학생은 운다” 라는 혈서로 된 플래카드를 들고, “정부는 한일회담을 즉각 중지하라”는 등 구호를 외치며 단독으로 시위를 했다.
한편 일요일인 29일 하오 5시쯤 달성공원에서 열린 대일굴욕외교반대 경북투위의 성토대회에 참가했던 200여 명의 청소년들은 대회가 끝나자 “박 정권과 김종필은 반성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감행했다. 이들은 “제2의 이완용을 추방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했으며 민정당 및 민주당사 앞에서 만세삼창 후에 해산했다.
30일 아침 9시 반 강릉고생 약 600명은 “대일굴욕외교반대”와 “모주 먹고 이제는 정말 못 살겠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청광장을 거쳐 시가를 행진했다.『동아일보』 1964.3.30 석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