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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선과 청구권 교환 안 해” 김종필, 서울사대 강연회

9일, 김종필 공화당 의장은 “나는 이 나라 학생 못지않은 민족혼의 소유자”라고 말하고, “그러나 한일협상은 조국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거시적인 안목으로 타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3·24 학생시위 이후 이른바 ‘대일측면외교’에서 손을 떼고 대(對)학생무마공작에 나선 김 의장은, 이날 그의 첫 심포지엄을 모교인 서울사대에서 갖고 이와 같이 말했다. 김 의장은 “세계 제5위의 공업국인 일본한국 없이도 능히 번영해 나갈 수 있는 나라”라고 말하고, “그러한 일본한국과 손잡으려고 애쓰는 것은 목전의 소리(小利)를 떠나 아시아라는 큰 덩어리의 안전을 위한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후진성’이라는 대명사밖에 없다”고 말하고, “우리는 조상들이 지녀왔던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불식하고 자손들을 위해 좀 더 값진 유산을 남겨놓도록 전위적인 일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소위 김-오히라 메모에서 “평화선을 청구권과 ‘바터’한다는 조건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김 의장의 연설이 끝난 후 사대학생들은 토론형식의 질의응답을 벌였다.
▶문 일본은 국교정상화도 되기 전에 40여 개의 상사들을 한국에 진출시키고도 한국 국내법에 의거한 상사등록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한국에 대한 일의 경제침략의 전조라고 보지 않는가.
▶답 한국에 들어온 일본 상사들은 대개가 국제 입찰에 응하기 위해 2, 3인씩 출장형식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 정부는 이들의 상사 활동상을 목하 조사 중이며 결과에 따라 응분의 조치가 있을 것이다.
▶문 5억 불의 대일청구권은 그 도입조건에 따라 일의 경제적 식민지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보는데?
▶답 대부분의 후진국들은 선진국의 경원(經援)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갖고 있다. 이 공포감을 제어하고 민족자각에 입각하여 과감한 수원(受援)태세를 갖춘 후 선진국의 경원을 받아들이면 ‘식민지화’ 운운은 한낱 기우이며 그것만이 후진성을 탈피하는 유일한 길이다.『경향신문』 1964.4.9 석1면. 이날 김종필은 “많은 사람들이 한일회담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적하나 그보다는 자유진영 국가간의 결속과 협조에 강조점이 주어져야 한다.”라고 학생들을 설득하였다. 『대학신문』 1964.4.13 1면(홍석률, 「굴욕외교 반대투쟁과 6·3운동」, 『근현대사강좌』 제6호, 1995, 120쪽에서 재인용) 김종필의 발언은 결국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자유진영의 결속’이라는 냉전적 요구가 ‘민족의 자립적 발전’이라는 민족적 이해관계보다 앞서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군사정권이 이승만 정권의 극우반공적 성격을 그대로 계승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냉전체제의 중압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4월 공간의 민족주의적 정서와는 전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홍석률, 「굴욕외교 반대투쟁과 6·3운동」, 『근현대사강좌』 제6호, 1995,120~1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