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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문리대생 시위

20일 하오 1시 30분부터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 주최 4·19 4주년 기념식이 문리대 교정에 있는 4·19학생혁명기념탑 앞에서 문리대생 약 200명이 모인 가운데 엄숙히 거행되었다.
학생들은 기념식에서 선언문을 채택하여 ‘한일굴욕회담의 반대’, ‘사회구조의 민족적 재편성’,‘대학의 완전한 자유화와 이의 제도화’ 등을 요구하였다. 선언문은 한일회담 문제에 대하여 “정치, 경제, 문화의 제영역에 있어서 일본의 모든 침투를 소화할 수 있는 민족적 자립의 토대를 완전 구축하고 민족적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평등한 입장에서 재출발되어야 한다”고 하는 한편,“일본 식민주의자들의 도덕적 반성의 구체적 표명이 한일회담에 전제가 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오늘의 빈곤과 혼란에 대한 궁극적 대안은 “민주주의적인 민족적 자립임을 재확인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사회구조의 민족적 재편성”이라고 지적하였다.
식이 끝나고 문리대생 200여 명과 법대생 50여 명 등 약 300여 명의 학생들은 “붉은 피는 매국정권을 증오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2시 5분 전 시위에 돌입, 교문을 나와 원남동을 거쳐종로4가까지 나왔으나, 경찰의 제지를 받고 연좌하였다. 이들은 ‘애국적 시민은 우리 대열에 서라’, ‘경찰은 애국적 시민을 막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약 300여 명『6·3학생운동사』에는 합세한 시민의 수를 20여 명이라고 하였다.(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258쪽)의 시민들이 합류했다.
2시 30분쯤 학생들은 다시 저지선 돌파를 기도하다 경찰과 충돌, 혼란을 빚어냈다. 그러는 중문리대 김문원을 비롯해 학생 30명경향신문은 연행자 수를 8명이라고 보도하였다.(『경향신문』 1964.4.20 석7면)이 경찰에 연행되었다.『동아일보』 1964.4.20 석7면
서울대학교 4월혁명 제5선언문 부단히 전진하는 진리는 항상 새로이 창조되는 역사적 현실의 실천 속에 그것이 존재함을 직시케 한다.
4년 전 그날의 투쟁은 구시대의 유물인 낡아빠진 반민족적 반민주적인 전근대적 정치체제의 항쟁이었다.
그러나 민족사의 전진을 위한 우리의 피어린 몸부림은 동일한 체질의 변모에 불외(不外)한 정권에 의해 유린되고 봉쇄당한 채 우리는 전진과 창조 없는 슬픈 방황의 의미를 반추해 왔다.
전진하는 역사는 단절을 용인하지 않는다. 투쟁의 의의는 진정 지금 이곳의 현실 속에 부각되어 있어야만 했다. 4월 그날의 부정과 긍정의 의미는 오늘의 이 모순을 부정하고 새로이 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한국의 전 정치사를 부패한 구악으로 규정하면서 집권한 정부는 퇴적된 구악 위에 신악을 확대 재생산시켰다. 전 한국의 정치사를 타율적 비자유적 인종으로 규정하면서 집권한 정부는 반세기 전 식민통치의 악랄한 여운이 이 민족의 혈루 속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민족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기아, 실직, 물가고, 이 모든 혼란 위에 군림하면서 일본과의 굴욕적 회담을 강행하고 있는 정부는 평화선을 울리는 이 민족의 장송곡과 일본의 진무곡이 조국의 근대화와 민족적 자립을 약속한다고 강압적으로 기만하고 있다. 반세기에 걸친 일본 제국주의의 치떨리는 탄압을 기억하는 우리는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도덕적 반성의 구체적 표현이 한일회담의 전제가 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한일회담은 정치, 경제, 문화의 제영역에 있어서 일본의 모든 침투를 소화할 수 있는 민족적 자립의 토대를 완전 구축하고 민족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평등한 입장에서 재출발되어야 한다.
미국과의 건전한 우의가 민족으로서의 긍지를 손상시킴을 뜻하지 않음을 확신하는 우리는 더 이상 굴욕적 한일회담을 종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의 빈곤과 혼란이 외국의존으로 해결되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는 우리의 궁극적 대안은 민주주의적인 민족자립임을 재확인하면서 경제, 정치, 문화의 모든 사회구조의 민족적 재편성을 요구한다. 민족적 자립과 번영으로 가는 모든 진리가 밀폐되지 않는 대학의 사명과 권위임을 자신하는 우리는 대학의 완전한 자유화와 이에 법제적 제도화를 요구한다.
현실 속의 모순관계를 극복함이 새로운 역사의 창조와 발전의 시원적 자세이다. 모든 창조와 발전은 이러한 자세의 괴인(怪忍)스러운 실천을 통하여 쟁취되어 왔다. 민족과 시대가 요청하는 이 결단과 실천이야말로 젊은 우리들 생명의 필연성이며 자유의 실천영역인 것이다.
우리는 계속 4월 그날의 의용스러운 피! 그 피의 마르지 않는 도정을 따라 용감스러이 우리의 대열을 전진시킬 것이다.
1964년 4월 20일김삼웅 편, 『민족, 민주, 민중선언』, 일월서각, 1984, 3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