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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P 제2의 폭로

20일 하오, 서울대 교정에서 열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에서 서울 문리대 한일굴욕외교반대투위가 공개, 폭로하기로 했던 YTP 회의록의 일부가 〈동아일보〉 21일자 3면에 특집으로 게재되었다. 이 회의록은 YTP회원으로 있다가 작년 11월에 탈퇴한 대학생이 학생투위 측의 설득에 따라 그가 YTP 비밀회합에 참가했던 1963년 11월까지의 회의 내용을 지난 4월 26일 학생투위 측에 넘겨준 것이라고 한다.동아일보』 1964.5.21 석3면. 송철원은 이 회의록을 통해 당시 YTP가 처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유추했다. 첫째, 포섭대상이 주로 대학생인 점으로 보아 YTP의 궁극적 목적은 학원 내에 박정희 정권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것과 반대세력의 동태를 조사하여 보고하는 학원사찰의 협조자로서의 역할일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YTP가 피라미드 형태의 비밀조직이었다는 사실이다. 셋째, YTP 즉 청사회라는 조직 명칭이 1963년 7월 25일 결성대회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이 조직이 존재했었다는 점이다. 넷째, YTP 내부에 갈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다섯째, YTP의 태생적 약점인 비밀조직이라는 사실이 조직 확충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점이다. 끝으로 야당과 언론에 의해 YTP가 공격을 받자 지도부의 불안감이 증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송철원은 이 회의록이 1963년 10월 26일자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YTP 서울특별시위원회는 이 시점에 조직이 거의 와해 직전까지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송철원, 「YTP(청사회: 靑思會)」, 『기억과 전망』26,2012, 355~3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