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글자 크기 조절

5·20 데모로 수배 중이던 현승일, 기자회견 후 자진출두

30일 하오, 5·20 서울대 문리대 데모 주동자로 지목되어 수배 중이던 현승일(24, 정치과 4년)은“김중태의 피살설 기사를 읽고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기 전에 경찰에 자진출두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히면서 동대문서에 출두, 11일간의 도피생활을 청산했다.
그는 “정부가 사태를 수습하려 들지는 않고 마치 국사범인 양 사태를 부당하게 취급하기 때문에 은신한 것이며, 이 이상 매카시적 수법으로 취급한다면 정부를 상대로 무고죄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중태가 참변을 당했다고 믿지 않는다”면서, 현상 벽보 등을 거리에 붙여 데모 학생들을 국사범인 양 꾸며 탄압의 구실을 삼으려는 것은 정부가 아직도 지각을 못 차린 증거라고 통박했다.
현승일은 “민족주의비교연구회는 학술연구단체로서 한국적 민족주의 이념을 과학적으로 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때는 공화당 ‘사쿠라’라는 오해도 받았었다. 혁신계 자금을 받았다 운운하는 것은 3·24데모 때 조련계 자금을 받았다는 조직과 마찬가지로 학생운동을 불온시하려는 매카시적 수법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정부가 5·20을 난동으로 규정한 데 대해 4·19도 난동이냐고 반문하고, 5·25궐기대회는 5·20에 대한 정부의 강경책이 불러 일으킨 반발이라고 하였다. 이어 현 시국 수습방안으로 ① 정부가 지금 같은 데모탄압·방지 수단을 지양하고, ② 학원 내의 YTP 활동 봉쇄, ③ 3·24 이후의 구호가 되어 온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된다고 3개 방안을 제시했다.『경향신문』 1964.5.30 석7면, 『동아일보』 1964.5.30 석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