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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 대규모 시위, 고려대·서울대 등 약 3,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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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고려대 학생 2,000여 명과 서울대 법대생 약 500명, 서울대 상대생 300여 명 등 약 3,000명의 학생들이 상오 11시경부터 “박정권 하야”와 공포정치 지양을 외치며 데모에 나서 신설동 등몇 군데에서 대규모 경찰대와 충돌했다.박정훈 증언(오제연 면담, 코리아나호텔 3층 아리랑, 2007.5.23)에 따르면, 6월 2일의 시위를 주도한 학교는 고려대였다. 그동안 온건, 소극적이던 총학생회와 노선을 달리하며 고려대 한일협정반대투쟁을 주도하던 정경대, 법대, 상대 등 단과대학 학생회는 6월 1일 구국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다음 날인 2일 전면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426쪽에서 재인용)
▶고려대 2일 상오 11시, 약 2,000명고려대 시위참여 학생 수에 대해 1,000여 명(『경향신문』 1964.6.2 석1면), 1,500명(서중석, 「6·3사태: 64년 봄의 한일회담 반대시위」, 『신동아』, 1985년 6월호, 314쪽)으로 다르게 쓰고 있음의 고려대 학생들은 동교 종합배구장에서 구국투쟁궐기대회를 열고, ‘박정권 타도’를 외치면서 구국선언문(법학 4 김제하 낭독)을 채택, 이어 ‘행동에 들어가자’는 호소문 낭독 후 격문을 외치면서 11시 20분부터 데모에 돌입, 교문을 나서 안암동 로터리로 밀려나갔다. 이들은 “민족분열을 일삼는 독재정권 물러가라”, “주관적인 애국심이 객관적인 망국행위임을 직시하고 박정권은 하야하라”, “배고파 못살겠다, 악덕재벌 잡아먹자”, “YTP색출”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이러한 내용의 행동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안암동 로터리에서 저지당하자 일대 공방전이 벌어져, 다수의 학생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30여 명이 연행되었다. 그사이에 1,000여 명의 학생은 신설동 로터리 안암동 쪽 길과 청량리 쪽 길에 몰려 경찰과 대치했다. 시위대는 3, 400명씩 분산하여 경찰의 최루탄 공세에 투석으로 응수했는데, 대광중고교생 500~600명이 교정 담 안에서 경찰에게 투석하기도 했다.
신설동 로터리까지 나왔다가 일단 분산했던 시위대는 하오 1시 50분쯤 종로3가에 약 300명당시 학생 수에 대해 300명(『동아일보』 1964.6.2 석3면), 150여 명(『경향신문』 1964.6.2 석7면), 500명(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187쪽)으로 다르게 쓰고 있음이 집결, 청계천2가를 거쳐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여 “박정희는 즉시 하야하고 여야 협조하라”는 구호를 외쳤는데, 시위대 수가 차츰 불어나자 200명가량을 돌연 나타난 사복경찰들이 마구 잡아 차에 싣고 갔다. 이날 시위에서 경찰의 일제 반격전으로 김영모(경영 1년), 신정일(농경3년) 등 5~6명은 곤봉으로 머리 등을 맞아 중상을 입었고, 조완(16, 신설동) 군은 최루탄에 맞아 귀를 다치는 등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서울상대 2일, 약 400명의 서울대 상대생들은 상오 11시 15분부터 교내에서 ‘매판세력성토대회’를 열고 “매판세력타도”를 선언한 다음, ‘매판세력’을 신랑으로 하고, ‘가식적 민족주의’를 신부로, 신제국주의를 주례로 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에서 주례는 “특히 신부는 매판자본과 사이좋게 학생을 기만하는 데 공을 세웠다. 또한 나 제국주의의 정체를 숨기는 데 충성을 다했으니 너의 결혼을 축하하노라. 신부는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학도들을 계속 협박하라. 안 되면 최루탄을 쓰라. 무엇보다도 나와 너희들 부부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 학생이 가장 두려우니라”는 주례사를 하였다.
낮 12시경 시위에 나서 고려대 앞까지 진출했던 학생 약 300명가량은 대부분 경찰저지선에 부딪혀 더 나아가지 못하자 연좌데모를 벌였다. 이후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경찰저지선을 뚫으려다 최루탄 세례를 받았고, 이에 투석으로 응수했다. 하오 1시쯤 그 중 30여 명은 경찰에 연행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일단 흩어져 개별적 행동으로 문리대 강당에 집결했다.
▶서울법대 2일 상오, 서울대 법대생 약 500명은 교내에서 구국궐기대회를 연 다음 단식농성 중 인 문리대생들을 찾아가 격려하고 11시 50분쯤 “누구를 위한 정권이냐, 국민은 배고프다”, “사수하라 학원의 자유”, “지양하라 공포정치”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데모에 나섰다.
종로5가까지 진출, 연좌데모를 벌였던 시위대는 “데모가 난동이냐? 쿠데타가 난동이냐?”,“간다 간다 교도소로 단식투쟁하러 간다”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이 동원한 6대의 트럭에 자진분승, 동대문서와 종로서에 연행되어 갔으며, 트럭이 만원이 되어 타지 못한 30여 명의 학생들은 도보로 자진 동대문서에 출두했다.
중앙청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 500명의 경찰관과 약 700명의 군인이 집결해 있다.『경향신문』 1964.6.2 석1·7면, 『동아일보』 1964.6.2 석1·3면, 『경향신문』 1964.6·3 석4면, 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185~187쪽, 269~271쪽
고려대학교 6·2 선언문 오늘 우리는 조국의 역사적 부름에 당하여 여기 결의와 행동으로써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는 바이다. 민족의 생활진로가 일보 밖의 지표를 발견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 이상 더 잔인하게 인간생활을 영위하여야 하기에는 우리들의 선조들은 너무나 슬퍼한다. 우리는 민족이 임종을 고하는 호곡을 듣고 있다. 독재와 전대미문의 가공할 부정, 부패, 불신, 악덕재벌의 횡포, 이 모든 간사한 정치적 폐해는 행동의 전위에선 우리들과 전 국민의 과업으로 요구되는 박정권 타도의 이유이다. 이 나라의 민주정치와 장래를 위해서 는 또다시 헌정을 역행하는 군인들의 불법쿠데타는 없어야 할 것이다. 민주선거로서 수립한 위장된 박정권의 제3공화국을 헌법에 의한 4년간의 법적 기간으로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조국의 각박하고 비참한 현실이 우리를 피의 반항으로 이끈다. 우리는 현 정권의 단말마적 만행과 처절한 집권욕을 좌시할 수 없으며, 헌정을 배신하고 정권욕에 광분하는 박정희 이하 현 집권자들의 기적적인 집권을 묵시하기에는 너무도 조국의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
오늘 우리들의 이 역사적인 순수성을 기조로 한 이 대열에 어떠한 불순세력도 개재할 수 없으며, 불행하게 된 몇몇 군인들의 전철을 답습하지 말고 대공전선의 강화를 이 시간 같이 하여 더욱 공고히 하여줄 것을 바라는 바이다. 박정권은 정권유지를 위하여 가사지경에 접한 이 할퀴고 찢긴 맨발의 민족을 끌고 나갈 것이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박정권은 최후의 양심을 발휘하여 과거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쌓은 바 그 훌륭한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외상하여 솔직하고 양심적인 모범군인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 당신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애국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말한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책을 읽기 위해 총을 훔쳐야 하는 이 처참한 사실에서 당신은 또 무엇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주관적인 당신의 애국심이 객관적인 망국이 되었음을 당신은 솔직히 통탄하며 이 민족의 대광장에 나와 따뜻한 눈물로써 작별인사를 하기 바란다. 당신들의 민족주의는 이미 장례식으로 종언을 고했지만 이로 인한 민족분열의 책임을 당신 생전에 사죄할 길이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공동운명구조선에 탑승한 이 자유민주혁명의 대열에 당신의 형제들이 출전하였으니 차제에 깊은 감회와 아울러 찬사를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전 국민들은, 우리의 대열에 적극 호응할 것이며 북쪽의 공산세력과 현해탄의 독사설의 전과범이 하루를 멀다 하고 일보일보 잠식하고 있으며 아국에 동고동락해 온 미국이 또한 당신들의 심야의 강도행위에 크게 노한 점, 아직도 가시지 않아 하루하루 이 민족에 대한 등한시를 노정함으로써 국제간의 고립을 크게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주의라는 지도이데올로기를 가식적으로 표방했던 5·16군부쿠데타의 미로를 직시했다. 결국 그들의 무지와 무능은 고도의 자본주의 단계에선 일본의 악랄한 신제국주의 경제침략의 상품시장으로 이 땅을 선양하려 했다.
조국의 주체성을 그다지도 수호하려 했던 민족주의는 미국의 철저한 간섭으로 좌절을 거듭해야만 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민족주의를 이 유린된 폐허의 초토 위에 재생시킬 정권을 기대한다. 파쇼화를 향한 군부가 쿠데타로 교체되는 사회를 우리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주체성을 상실한 채 그 어떤 종주국에 의존하려는 임시변통의 구정치인의 비민족적 현장타개식의 신정부도 결사반대한다. 우리는 합법적인 민주주의가 강인하게 주체성을 견지하며 현실적으로 민족을 아사의 경지에서 구출하는 위대한 비전을 갖는 정부를 갈망한다. 친진보 반보수라는 문구가 반공법에 저촉되는 질식할 언어의 ‘터부’(Taboo)를 파괴하자.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현실적, 실리적 민주주의를 배양하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이승만 씨의 정치철학을 당신은 꽃다발을 보내고 받아온 것입니까!
우리는 다시 한 번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박정권의 타도를 선언할 것을 전 국민과 아울러 결의하는 바이다.
1964년 6월 2일
고려대학교 구국투쟁위원회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479~481쪽
격문 내 친구, 내 하숙방 후배인 YTP야, 이 역사적인 요청에 반역하지 말고 따뜻한 자유의 품에 돌아와서 이대열에 참가하라.
오늘의 이 행동은 민족광장에서 결의한다. 또다시 이 거리에 나서야 하는 자유민의 후예들은 전 민족의 염원이 무엇인가를 통감하고, 오늘의 이 대열에 참가한다. 독재, 정보, 부패, 불신, 강압정치의 최후의 발악은 우리들을 또다시 거리로 끌어냈다. 박정권의 민족적 민주주의는 장례식으로 끝나고 박산군, 김완용도 매장식으로 끝났으니 실리 있고 융통성 있는 현실적 민주주의의 알찬 씨앗을 새로 뿌려야 할 때는 왔다.
우리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우리는 기아의 거리를 맨발로 투쟁할 것이다.
1. 주관적인 애국충성이 객관적인 망국행위임을 직시하고 박정권은 하야하라.
1. 민족분열 일삼는 독재정권 물러가라.
1. 배고파 못 살겠다! 악덕재벌 잡아먹자.
1. 미국은 가면을 벗고 진정한 우호국임을 보여달라.
1964년 6월 2일
고려대학교 구국투쟁위원회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479~481쪽
서울대 상대 결의문 1. 구속된 학생들의 즉시 석방
2. YTP, 법원난입, 송 군 린치사건의 배후관계자를 처단하라.
3. 매국적 매판세력 배제
4. 한일회담 중지하고 민생고 해결하라.
5. 이와 같은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계속 투쟁한다.『경향신문』 1964.6.2 석1면
서울대 법대 결의문 1. 정부는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를 강압적인 수법으로 탄압치 말라.
2. 정부는 구속된 애국학생을 무조건 석방하고 사후를 보장하라.
3. 정부는 공부하는 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지 말라.
4. 정부는 국민에게 의혹을 주고 있는 일체의 사건을 공개하고 그 관련자를 처벌하라.
5. 정부는 군정 잔재인 비밀경찰 중앙정보부를 즉시 해체하고 그 막대한 정보비를 민생고 해결로 돌려라.
6. 정부는 학원사찰을 즉각 중지하고 YTP의 정체를 자진 폭로하라.
7. 정부는 법원 난입사건, 학생 린치사건의 배후를 철저히 밝혀라.
8. 군정 이래의 모든 부패부정의 괴수인 민족반역자들은 과거를 참회하고 물러나 역사의 심판을 받으라.
9. 이와 같은 우리들의 정당한 요구를 또다시 무시할 경우에 일어날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음을 확인한다.『동아일보』 1964.6.2 석1면
분류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196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