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회 중심 적색활동” 내무부, 김정강 등 시위 배후 진상발표
18일 현재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데모 주동학생들은 총 33명 중 17명이 체포되고(3명은 송치) 16명은 계속 수배 중인데
그는 문리대 학생신문인 『새세대』(권명희, 새세대 기자, 지리학과 1년, 검거), 학생회(박영조, 사회학과 3년, 검거), 민족주의비교연구회(조화규, 사회학과 4년, 동회 4대 회장, 검거), 당수부(백성진, 사회학과 2년, 검거), 향토개척단(조동일, 전 민통련 조직과장, 국문과 3년, 검거) 등의 학생단체를 포섭했고, 지방조직으로 전 민통련 성대 위원장 김승균(동양철 4년, 검거), 대구에 박용목(경대출신, 교사, 검거), 부산의 전 경남지구 민통련 위원장 손모(미검), 광주의 김시현(전남대 상대 4년, 검거) 등을 포섭하여 지방조직을 확충했다.
불꽃회의 강령 요지는 인도 네루식 중립주의나, 스칸디나비아식 개량 복지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의 궤도를 걷는다”는 것이었다.
김정강은 63년 11월 대학의 등록금 인상이 발표되자 이를 구실로 그동안 개입해 오던 반정부데모를 꾀했으나 정부의 등록금 환원조치로 중단되자, 64년 3월 정부의 한일회담 추진계획과 야당의 이에 대한 반대투쟁이 전국적으로 펼쳐지자, 반정부데모 시기가 왔다고 인정, 학생데모를 시도하였다. 이어 3월 초순 박한수(서울대 문리대 정치 4년)가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문리대 정치학회 주동으로 3.15에 감행하겠다고 하자 김은 야당이 한일회담반대 전국유세를 하고 있으므로 반대 무드가 전국적으로 익어가면 그때 가서 하기로 이를 거절하고 3월 말 또는 4월 초순에 거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3·24 이후 계속적으로 데모를 전국적인 조직망을 통해 주동했다.
김은 데모 조종에 있어 언제나 김중태를 앞세워 자기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현정부가 넘어지고 보수정파가 잇달아 무너지면 반드시 사회주의 사회가 온다고 사회주의 투쟁인 데모를 적극 교사했고 대중적 동정심을 이용, 데모를 확대시키는 방책으로서 단식 데모를 계속하게 하여 6월 1, 2, 3일에 타 대학에서 데모가 일어나면 단식 중 쓰러진 학우를 들것에 메고 거리에 진출할 것을 지시했다.
한편 18일 상오 민기식 계엄사령관은 육군본부에서 내무부 치안국 정보과 근무 박문병 경감, 조상표 경사, 기태식 순경 등에게 각각 공로 표창장과 금일봉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