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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좌익 6만 명, 한일협정 규탄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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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12일발 AP동화통신) 12일, 일본 공산주의자들은 도쿄와 여러 도시에서 “월남에 대한 미제침략”을 규탄하고 한일국교정상화조약의 비준을 반대하는 궐기대회시가행진을 벌였다.『동아일보』 1965.9.13 석1면. 일본에서의 한일협정 반대운동은 1965년 9월경부터 본격화되었으며 사회당과 공산당 및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가 주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 역점을 두었으며 한일조약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일본에서의 한일협정 반대운동의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일조약을 한미일 군사동맹, 나아가서 미국의 군사적인 전략의 일원이며 ‘동북아시아 군사동맹(NEATO)’ 형성을 위한 작업의 하나로 보고 일본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한일조약 체결로 인한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협력은 일본 독점자본에 대한 경제침략을 기도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셋째, 한일교섭이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시키고 남북통일을 저해할 것이며 박정희 정권이 ‘군사독재정권이기 때문에 일본은 민주적인 정권이 될 때까지 교섭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중에서 첫째 논거가 핵심적이며 일반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한국 측의 한일조약 반대운동이 가장 중요시했던 일본 식민지 지배의 역사청산이라는 논리와는 엇갈리는 논리였다. 일본의 한일조약 반대운동은 아시아의 민족해방운동을 지지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반동성에 주목하고 한국민중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에 대해 강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오오타 오사무, 「한국에서의 한일조약 반대운동의 논리」, 『역사연구』9, 2001, 198쪽) 비슷한 입장으로 요시자와 후미토시와 이원덕도 반대운동의 논리를 1) 한일조약은 한국 남북분열을 고정화하고 한민족의 비원인 남북통일을 저해한다는 논리, 2) 한일조약이 본질적으로는 한일군사동맹이며 미국의 비호 아래 일본, 한국, 대만의 3개국을 묶는 북동아시아 군사동맹으로 장래 발전할 수 있다는 점, 3) 한일조약은 일본의 독점자본에 대해 경제협력의 명분하에 대한 경제침략을 획책할 기회를 준다는 것으로 요약된다.(이원덕, 『한일과거사 처리의 원점-일본의 전후처리 외교와 한일회담』,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277~279쪽, 요시자와 후미토시, 「일본에서의 한일조약 반대운동」, 『한일민족문제연구』 vol.3, 2002, 151~152쪽)
분류
한일협정반대운동 / 해외 및 북한 1965-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