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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사료 수집

2016년 4월 27일, 사료관은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이 소장하고 있던 민중문화예술운동 자료를 수집했다. 

지난 3월 민예총은 망원동으로 사무실 이전을 앞두고 사료관으로 기증문의를 해왔다.

민예총 배인석 사무총장과의 수차례 실무협의를 통해 이관방안 및 내용에 대한 협의를 하고, 4월말 이전에 이관을 완료하기로 했다.

기증자료의 1차 선별은 민예총이 담당하여 소장할 자료와 기증할 자료를 분류하였다. 사료관은 사전 현장실사를 통해 수집분량과 내용 등을 확인하였고, 직원 3명이 사료 유형에 따른 선별작업을 하였다.

수집사료는 수집상자 22개 분량의 문서사진영상박물 등이며, 사료관리지침에 따라 정리작업을 마친 후 공개할 예정이다.

1987년 610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문예운동계에도 새로운 활동방식이 생겨났다.  민중문화예술을 표방하는 단체들은 판금도서 해제와 공연의 사전심의제도 철폐 등으로 합법적인 활동공간이 넓어지고 있었다.

민중의 이익과 요구에 답하려는 예술가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각 민중문화예술 영역에서 통일된 조직의 필요성과 더불어 새로운 예술인 조직 결성도 요구되었다.  1988년 9월 김용태,  황석영, 오종우, 채희완, 임진택 등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조직의 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1988년 12월 23일 서울 YMCA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면서 민예총이 공식출범하였다. 

민예총은 "민중과 확고히 결합된 투쟁의 현장에서, 우리의 대중성은 무엇이고, 운동성은 무엇이며, 진정한 예술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자각할 수 있게 될 것" 이라는 활동방향을 내세우고, 창립선언문에서 "민족민주운동, 통일조국건설운동의 대의를 체현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음으로써, 소수의 예술가만이 아니라 민중 전체가 보다 높은 예술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참 민중적 민족문화예숭의 기틀을 건설해 낼 것"을 선언하였다.

민예총은 개인들의 연합체적 기구를 표방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장르운동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문인들의 조직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작가회의), 민중미술운동 조직체인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 민중연희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민극협), 민족음악협의회(민음협)가 창립됨으로써 장르협의체 연합으로 활동하게 된다.

특히, 대중운동 속에서 문예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노동자 문예운동이 급부상하게 되면서 노동자 풍물패, 노동자 연극 전문 집단, 노동자 문학단체 등이 결성되었다. 다양한 민중가요가 창작 보급되어 집회참여자들의 공감대를 확장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노동절 101주년 기념작 <파업전야>, 광주항쟁을 다룬 <오! 꿈의 나라> 같은 영화의 상영쟁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민예총의 활동이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계가 있었지만 1990년 이후에는 전국 12개의 지역문예운동단체들이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