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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에 140보

동일방직의 작업장에는 "1분에 140보"라는 문구가 표어처럼 붙어있었다. 성인의 일반 보행속도는 110걸음 정도이다. 여성노동자가 대부분이었던 동일방직의 작업장에서 그녀들은 기계 사이를 속보로 오가며 실을 잇는 작업을 했다. 한 명이 열대가 넘는 기계를 맡다보니 그 사이를 날아다니듯 했다.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은 생산부장이 내뱉는 굴욕같은 채근을 들어야 했다.

1분에 140보. 노동자들은 기계속도에 맞추어 12시간 이상을 거의 쉬지 않고 기계처럼 일했다. 공장에 불이 꺼지는 일 없이, 기계를 멈추는 때가 없이 일했다. 동일방직 전 노조위원장 이총각은 이를 두고 ‘충성’이었다고 회고했다. 

“거기에(품질교육) 나는 더 신이 나서 죽기 살기로 일을 했어요. 들어간 지 만 4년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4년 동안 결근 한번 하지 않았죠. 그 정도로 충성을 했지요”

이총각은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품질관리 교육을 받았다. 품질관리 교육은 보통 4,5년 경력의 모범사원들 중에서 받았지만, 일을 잘했던 이총각은 월반한 모범생이었던 것이다.

당시 노동현장에는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회원들이 많았다. 동일방직에도 여럿이 있었다. 이총각은 이들을 사귀게 되면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일만 잘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아니다'라고 생각될 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노동조합을 알게 되면서 열심히 일해서 돈만 잘 벌어 가족들을 부양하고 가난에서 벗어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가난이 내 탓이고, 부모 잘못 만난 탓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노동조합을 알면서 이것이 내 탓도 아니고 부모 탓도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그때부터 노동조합에 반 미쳤죠. 인간답게 사는 것이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노동조합 밖에 없다는 거죠”

이총각은 노동조합 집행부를 맡으면서 노동운동도 일만큼 열심히 하자 가족들은 “너는 노조에 미친 것 같다”고 했다. 1분에 160보로 기계 속도를 뛰어 넘을 정도로 일에 “미쳤던” 그녀는 어용노조 집행부를 물리치고 민주노조를 세우기 위한 길고 긴 싸움을 했다. 1978년 2월부터 시작해 1981년에 중순에 정리가 된 이 싸움의 끝에 이총각이 만난 것은 각 공장에 뿌려진 블랙리스트였다.

* 숨겨진 한국여성의 역사/ 박수정 지음/ 이총각 편을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