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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계
등록일자
2017-03-21
YH무역의 노동자들은 밤 10시까지 야근을 하면 야식으로 빵을 받았다. 하얀 크림이 들어있는 달콤한 보름달빵이었다. 그러나 그 빵을 매번 먹을 수는 없었다. 고향에 있는 동생을 생각하면 맛있는 빵을 혼자 먹는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서 빵을 모아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부쳐주기 위해 노동자들은 빵계를 했다. 빵계원 10명을 모아 계를 하면 한번에 10개를 고향으로 보낼 수 있었다. 자기가 받은 것을 모아 보내려면 빵이 썩어 버리기 때문에 상호부조를 했던 것이다. 장시간 노동으로 지칠 대로 지쳐가는 배고픈 시간에 지급되는 달콤한 빵을 먹지 않고 모아 가지고 가는 날은 순간 부자가 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러나 빵계를 모든 사업장에서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YH무역처럼 규모가 큰 공장에서나 가능했다. 전태일 열사가 버스비를 아껴 배고픈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공장에서 집까지 걸어갔던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1960~1970년대는 경제 발전기였다. 경제성장의 주역은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노동자들이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노동자들에게 허울 좋은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을 주었으나, 간식으로 제공되는 크림빵 하나도 선뜻 먹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박정희 유신체제 아래에서 인간으로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기 위한 노동자들의 외침은 그저 탄압의 대상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