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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령의 역사
가장 오래 지속된 계엄령
1979년 10월 27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9번째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날이다. 전날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 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며, 이로 인해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0월 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 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되었다.
계엄령이란
계엄령은 국가비상 시 국가의 안녕과 공공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대통령이 선포하는 국가긴급권이다. 계엄령의 종류에는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이 있다. 비상계엄이란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하는 계엄을 말한다(헌법 제77조, 계엄법 제2조·제10조).
그러나 계엄을 선포할 때는 지체없이 국회에 통보해야 하며, 국회가 국회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는 헌법 규정이 만들어진 것은 재임기간 동안 4차례나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박정희 정권이 만든 유신헌법에서부터이다.
최초의 계엄령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모두 10번의 계엄령 선포가 있었다. 정부 수립 후 최초의 비상계엄은 1948년에 발생한 여순사건으로 10월 21일에 발효되어 이듬해인 1949년 2월 5일 해제되었다. 여순사건의 원인이기도 한 제주4·3사건과 관련해서는 1948년 11월 17일 선포되어, 같은 해 12월 31일 해제되었다. 이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 24일이다.
한국전쟁기에 몇 차례 계엄이 있었지만 전쟁 이후의 계엄은 모두 정치적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1960년 4월 19일 4.19혁명이 일어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3시를 기해 서울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출동시켜 학생 시위를 막도록 했다. 그러나 1시 30분부터 경찰의 발포가 시작되어 이미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온 상황을 덮기 위해 오후 1시로 소급해 적용하였다. 그럼에도 사태가 확산되자 오후 5시부터는 부산, 광주, 대전, 대구, 전주 등 전국 주요 도시로 확대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계엄령
이듬 해인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 주도하는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였다. 당일 새벽 쿠데타군은 서울과 언론기관을 장악하고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는, 아침 9시를 기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4.19혁명으로 탄생한 장면 정권을 해체시켰다.
한일협정반대투쟁이 한창이던 1964년 6월 3일, 학생과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오후 8시를 기해 서울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는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하였다. 1965년 8월 26일에는 또 다시 위수령을 발동하여 두 번째로 군을 투입하였다.
1972년 10월 17일에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치체제를 개혁한다”는 명목으로 국회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 헌법 일부 기능 중지, 비상국무회의 작동 등 4개 항의 비상조치를 포함한 특별선언을 발표하고는 이날 오후 7시를 기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부마항쟁에서 신군부 집권까지
1979년 10월 16일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부산 지역에서 격화되자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위가 확산된 마산 창원지역에는 10월 20일 위수령*을 발동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살해되자 10월 27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1980년 5월 17일,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과 신군부는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5월 17일 다시 한번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며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 선포했다. 5월 18일부터 이에 저항하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했다. 같은 해 9월 1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회에서 선출하는 대통령선거에 전두환이 단독 후보로 나서 제11대 대통령이 되었다.
계엄령은 이후 몇 차례 검토설과 위기설이 나돌기는 했지만 현재까지 선포되어 작동된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