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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마 마코토(飯島信)
사업개요
- 해외민주화운동
-
1차년도 사업으로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분 중에서 유럽지역 2명, 미주지역 2명, 일본 출장을 통해 일본지역 6명을 구술 녹취한 것은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향후 좀 더 체계적인 구술아카이브를 갖추기 위한 출발점으로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 유럽지역과 미주지역 4명에 대한 구술은 생애사적 접근으로 해외민주화운동에 대해 좀 더 심층적인 구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기존 다른 기관에서 수행한 구술이 주로 활동사에 집중했던 것과 차별성이 있다고 본다.
일본지역 6명 역시 생애사적 접근방식을 취했으나 빡빡한 일정으로 충분한 구술이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 상황에서 요청되는 민주화 국제연대를 모색하는데 일정하게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 2015~16년 2년 연속사업으로 2015년은 국내 거주자 중심으로, 2016년은 해외 거주자 중심으로 시행
○ 2015년은 유럽, 미주 지역은 국내거주 인사 중심으로 각 2인씩 4인을 선정하고 각 10시간씩 40시간, 일본은 현지 거주 6인을 선정하고 출장하여 각 2시간씩 12시간, 총 10인 52시간의 구술 채록함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이지마 마코토(飯島信)
- 면담자
- 권형택
- 구술일자
- 2015. 10. 8.
- 구술장소
- 도쿄 고라쿠엔 기독교센터
- 구술시간
- 149분
구술컬렉션 > 해외민주인사 > 아시아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 [이지마 마코토]
1948.5.15 도쿄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
대학 시절 전공투에 참가 패배를 맛본 후 재일한국인 차별 문제에 눈을 돌려 활동함. 이인화 목사 교회를 다니며 이케가미쵸 한국인 부락에서 2년간 박세일과 기숙
1974.1.15 한국문제기독교인긴급회의 결성에 참여, 1975년 초대 스태프로 뽑혀 근무
1974.1.23 1.17. 긴급조치 1호에 반대하는 기도회 석상 발언으로 체포된 김경락, 조승혁, 인명진 목사의 구속에 항의하여 첫 기자회견
1974-78 긴급회의 상근 스태프로 근무, <한국통신>의 편집인
1980-82 광주항쟁 이후 김대중 구명 서명운동을 위해 긴급회의에서 파견하는 실무자(사무국장)로 김대중 살리기 시민운동에서 와다 하루키, 시미즈 토모히사 등과 함께 일함
1985.2 2.12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씨가 귀국할 때 나리타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경호와 실무준비를 함
1991 오재식, 박상증, 마에지마 목사 등과 함께 긴급회의 해산식을 가짐
2009.4 일본NCC 총간사 취임. 도잔소 프로세스를 지원하기위해 홍콩에서 북한 대표단을 만남. 2010년 열리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회의’를 통해 북한과의 창국를 만들려고 함
2009.8 김대중 서거 시 한국에 조문 감
2010.6 재정개혁 등의 문제로 총간사 사임
2015. 현재 일본기독교교단의 간사, 3.11 동일본대지진 담당간사로 일함
- 구술내용 요약
-
기독교 집안 출생, 부모의 사랑과 기도로 성장, 대학 시절에 재일한국인 문제와 한국 민주화운동에 관심, 전공투 세대로서 권력·자본의 비정함을 실감, 한국문제기독자긴급회의 상근자로 《한국통신》 편집, 광주항쟁과 김대중 구명운동, 기독자민주동지회와 1987년 양김 분열에 실망, 한반도 통일운동은 동아시아공동체와 밀접한 연관, 아베 정권의 보수우경화에 대한 시각, 과거 경험 토대로 새로운 한일 네트워크 구축 필요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