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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추모집회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던 이한열은 연세대학에 입학하여 광주시민 학살에 대한 사진 전시회, 비디오를 보면서 그리고 학교집회에 참석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사회의 무풍지대에서 살아왔던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이한열은 86년 2학기부터 실천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현실의 중심부에 뛰어들었다. 동지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름 중 '烈'자가 매울 열이라면서 자신과 최루탄은 불과분의 관계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또 이름의 끝 글자가 같은 김주열과 자신을 비교하곤 했다. 어쩌면 동지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열리고 그 곳에 참가한 이한열은 그 투쟁 속에서 SY-44 직격 최루탄에 피격당하고 쓰러졌다. 이한열지의 피격사건은 전국으로 알려졌으며 학생, 시민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궐기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거대한 87년 6월항쟁의 함성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