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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고등학생 1천여 명, 공명선거 외치며 시위 전개
일자 : 1960.3.14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300매의 삐라를 써서 종로 입구로 나왔으나 경찰들이 너무 많아 광화문 네거리까지 뛰어나와 구호를 외친 학생은 40여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 시위를 했다고 밝혔다. 밤 9시 20분 경엔 세종로 네거리에서 균명고 학생 약 200명이 “공명선거”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다가 역시 경찰에 의해 5분 만에 강제 해산되었다. 경찰은 약 30명의 학생을 연행하였다. 이날 약 2시간 동안 경찰에 연행된 학생은 300명이며 시위에 참가한 학생은총 1천 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편 밤10시 경 서울시경은 서울지검에 사건 개요와 다음과 같은 학교별 검거인원을 보고하였다.•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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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시위에 초등생도 가세
일자 : 1960.4.22
분류 : 시위 상황 > 인천
요약설명 : “인천고등학교의 박근정군을 죽인 경찰관을 체포하라”, “연행된 학생을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시위대가 연행된 학생 10여 명의 석방을 요구하자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연행했던 학생 10여 명을 석방하였다. 시위대는 “휴교조치를 해제하고 곧 학교 문을 열라”고 교육구청 앞에서 시위하고 만 6시간 만인 오후 4시 경 자진해산하였다.『기호일보』1960. 4. 23 3면 ;『조선일보』1960. 4. 23 조3면 ; 『동아일보』1960. 4. 23 석3면 한편 학생시위로 전 시내가 들끓고 있는 시내 경동 네거리에서 이병찬(38, 전 경인일보 체육부장)은 22일 정오 경부터 단독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동아일보』196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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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200여 명, 횃불시위 감행
일자 : 1960.4.23
분류 : 시위 상황 > 인천
요약설명 : 7시 경, 또다시 신흥동 네거리에 시내 중·고등학교 학생 200여 명이 집결하였다. 이들은 횃불을 들고 시위를 감행하였는데, “학원에 자유를 달라!”, “살인경찰 물러가라!”, “3·15선거는 무효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답동 네거리를 거쳐 경동파출소 앞을 지나갔다. 시위대는 창영동파출소에 투석하여 전면 유리 2장을 깨고, 실내에 있는 거울을 파손하였다. 동인천서 앞에서는 “구속학생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쳤는데, 안영수 경찰서장이 나와 “구속한 일 없다”고 이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는 사이 약 100명의 학생들이 더 가세하였다. 이들은 오후 9시 40분 경 동인천역 광장에서 만세삼창을 부르고 해산하였다.『기호일보』196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