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성사를 풍미한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
요약설명 : 학교 유리값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동맹휴학을 주도할 만큼 리더십도 뛰어났다. 이듬해 광주 서중에 합격한 그는 독자적으로 서클을 만들어 활동했고 민애청 학년위원(1학년 조직책)에 선임돼 시위 및 삐라 살포와 횃불투쟁 등을 이끌어 나갔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열일곱 살의 박현채는 빨치산으로 입산해 광주지구 부대원이 되었다. 이때 지리산에서 만난 광주서중 교장 박준옥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셨으며, 스무 살 미만으로 구성된 소년돌격중대 문화부 중대장으로 뽑혀 활동했다. 2년 뒤 산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체포된 그는 화순경찰서에 갇혔고, 부모님의 온갖 노력 끝에 석방되었다. 그의 독특한 이력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