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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 앞 바리케이드 뚫자 무장경관 발포, 사상자만 수 십 명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그도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김정렬, 『김정렬 회고록』, 을유문화사,1993, 234-235·238쪽). 동성고등학교의 기록에는 “공포이거니 안심했더니 앞뒤에서 구슬픈 비명이 터졌다. 무차별 사격! 1시 40분이었다”고하였다(『동성춘추』1960. 5. 15 1면). 또 다른 기록은 “1시 25분 시위대는 4대의 소방차를 빼앗아 경무대 정문을 돌파하려고 나아갔다. 그러나 정문 앞 30~40미터 쯤 다가섰을 때 경비경찰은 무자비한 야만적인 행위의 발사를 감행하였다”고 하였다(조화영 편, 93쪽).『동아일보』는 당시 “실탄 사격으로 사망이 확인된 학생은 손중근(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과 성명이 미확인된 또 다른 한 명, 적십자 병원으로 후송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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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경찰 저지망 뚫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종로5가 쪽으로 행진하던 성균관대학교 학생 2천여 명, “민주주의를 사수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나선 동성중·고등학교 학생 500여 명도 이들과 합세하였다.『대학신문』1960. 5. 2 3면 ; 『조선일보』1960. 4. 19 석1·3면 ;『동아일보』1960. 4. 20 조1·3면, 석3면. 동성중·고등학교 시위대 1천여 명은 19일 오전 10시, “민주주의 사수하자”, “우리는 무저항 평화주의자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학교를 출발하였다. 이들은 이화동에서 화신 앞을 거쳐 을지로 입구에서 동국대 시위대와 합세하여 경무대로 향하였다. 동성고 교장과 교사들은 학생들의 신변을 염려하여 처음부터 이들과 행동을 같이 하였다(『동성춘추』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