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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영송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호영송
-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정수)
- 구술일자
- 2010년 8월 26일
- 구술장소
- 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 구술시간
- 2시간 24분 47초
구술컬렉션 > 4.19혁명 > 서울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 1942년 출생 1960년 동성고등학교 학생으로 4월혁명 시위 참여
- 구술내용 요약
-
구술자 호영송은 1960년 동성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4월혁명을 맞이하였다.구술자는 문예부(반) 학생으로서 4‧19 이전 동성고 내에서 서울지역 고등학교 연합모임이나 공식적 조직을 통한 교류는 없었던 것으로 증언하고 있으며, 2‧28민주운동, 김주열 사건, 4월 18일 고려대생 피습사건 등 일련의 사건들이 동성고 학생들의 시위참여 계기가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당시 4월18일 시위 사전모의를 통해 4월 19일 동성고 내에서 시위 참여가 역할별로 이루어졌다고 증언하고 있다.4월 19일 아침 신문에서 고대생 피습사건을 보고 등교를 하였는데 2학년 곽근수라는 학생이 동성고등학교 앞 혜화동 로터리에서 경찰한테 맞아 머리를 다쳤다는 소문을 들었다. 첫 교시가 시작되기 전 당시 학생회장이고 샛별회를 같이 했던 김호상을 찾아가 전교생을 운동장에 집결시킬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서무실로 가서 가리방 옆에 있던 등사지에 결의문을 썼고 송승호가 창고의 커튼을 뜯어 '민주주의 사수하자', '대통령 선거 다시 하자' 등 두세 가지 구호를 먹글씨로 썼는데 이 글씨가 나중에 유명해져 대한뉴스 등에 4‧19를 상징하는 것으로 자주 보도되었다.구술자가 쓴 결의문을 김호상 학생위원장에게 전달한 뒤 결의문을 낭독(누가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음)하고 교문을 나서게 된다.이후 교문을 나서 동숭동, 종로4가, 시청 앞을 지나 중앙청, 경무대로 시위를 전개하게 된다. 당시 구술자는 11시경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가서 결의문과 보도자료를 전달했다. 문예반이었기 때문에 동성고 학생들의 시위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이다. 이 때문에 시위 전반부 상황은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으나, 시청 앞 시위 전개와 경무대 앞 발포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증언해 주었다. 구술자가 12시경 해무청 앞에 도착했을 때 동성고 학생들과 합류한다. 마침 최루탄이 날아와 눈물을 쏟는 와중에 서울대 법대 다니던 윤성한 선배를 만났는데 절대 눈을 부비지 말라고 하였다.효자동을 거쳐 L자로 방향을 틀어 경무대 쪽으로 나아갈 때 앞쪽에 동국대생과 서울대생, 서울 의대생이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수십 명 되어 보였다. 또 가두에 동성고 교장, 교감, 담임 등 최소 20명의 동성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지켜보며 함께 전진하였다.해무청을 지날 때 노깡(토관)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는데 누가 그랬는지는 보지 못했고 이즈음 해서 시위대가 하나가 되어 스크럼을 견고하게 짰기 때문에 마음대로 시위대를 빠져나갈 수가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동성고의 경우 진명여고 삼일당 앞까지는 같이 진출했는데 경무대 어귀에 경찰관들이 총을 겨누고 있어 행렬은 정지되었다. 맨 앞줄은 열댓 사람이 앉아서 총을 겨누고 있었고, 두 번째 줄은 총을 들고 서서 쏴 자세를 하고 있었다. 셋째 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모두 검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칼빈총 같았으며, 시위대와의 거리는 60-70미터로 기억된다. 서울사대와 동국대가 동성고의 앞에 있었다.총소리가 나면서 모두들 엎드렸고 사람들 쓰러지는 게 보였다. 얼마 지나 고개를 드니 넓적다리 부근에서 피고 흐르고 있었다.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는데 공적 용도로 사용되는 듯한 적산가옥 비슷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총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4‧19 뒤 성북구 보문동 윤보경 외과에 부상당한 친구들이 입원해 있어 문병을 간 기억이 있다.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종로5가쯤 와서 서울신문사가 불타는 것을 보았고 이때 선생님들이 귀교를 재촉하였다. 학교 도착해 교장선생님이 저녁 7시부터 계엄령이니 빨리 귀가하여 연락 있을 때까지는 외출하지 말라고 하였다.4월 20일 이후 구술자는 시위 참여를 하지 않았으며 5월19일 '4‧19기념문학의 밤'을 개최하여 전국적으로 4월혁명에 대해 추도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학생들의 정신을 고취시켰다고 증언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10_4월혁명50주년_호영송(서울중고등학생)_구술자료상세목록.pdf 80495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