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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식

구술자소개

구술자
강재식
면담자
이영재
구술일자
2010년 11월 23일
장소
4‧19민주혁명회 복지사업단
구술시간
1시간 15분 22초
구술아카이브 > 4.19혁명 > 서울 관련 구술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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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내용 요약

주 구술자인 강재식은 1939년 신안군(구 무안군)에서 태어나 다소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구술자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재학 중 폐결핵을 앓아 약 2년간 학업을 중단하고 치료 후 명지고등학교에 입학한 관계로 당시 동료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였다. 구술자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19민주혁명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현재는 4‧19민주혁명회 복지사업단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차례로 구술에 결합한 이근진, 이강수는 당시 명지고 재학 중 4월혁명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로 이근진은 제16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고, 이강수는 현재 서대문 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4월혁명을 전후한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는 이심전심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명지고에서 시위 참여를 주도한 학생들은 최인두, 장철, 이강수, 김도연, 오영길 등으로 기억한다. 이들은 강재식, 이근진와도 서로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 명지고의 시위 참여는 교사들이 교문을 막고 있는 상황이어서 뒷문으로 빠져 나가 남산을 내려가 퇴계로를 거쳐 시청 앞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시위 대열을 유지하며 왔으나, 시청 인근에서 시위대의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자 명지고 시위대는 일부는 경무대 앞, 일부는 광화문 일대, 서대문 일대로 흩어져 시위를 전개한다. 구술에 참여한 3분도 각각 경무대 앞, 광화문 앞, 서대문 이기붕 사저 앞 등 각자 다른 공간에서 4월혁명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근진은 경무대 앞에서 총격의 현장을 목격하였고, 강재식은 광화문 인근에서 전차를 앞세우고 시위를 전개하던 중 허벅지와 머리에 두발의 총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근진은 서대문 근처 이기붕 사저에서 시위에 참여하였는데 동대문경찰서 인근의 총격 현장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기붕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지고의 순국자는 4월혁명 직후부터 한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2009년에 순국자를 기리는 기념탑을 학교에 건립하여 세분의 순국자를 기리고 있다. 명지고의 순국자는 김종진, 황규직, 신경제로 확인된다. 명지고는 4월혁명 이후 당시 순국자, 부상자 등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부모가 없는 학생도 있고 해서, 어떤 연유로 학교에 못나오게 되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명지고 4월혁명 참여자 3분은 공통적으로 4월혁명 직후 다음날부터 정상적으로 학교에 등교하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당시 계엄령 하에서 학교에 등교할 수 없었던 상황임을 감안해 보면 사실관계의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4월혁명 상이자로 민주혁명회 회장을 역임한 강재식은 국가 차원의 위무작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10_4월혁명50주년_강재식(서울중고등학생2)_구술자료상세목록.pdf 72549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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