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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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건국대 사건 관련 글]
등록번호 : 00167744
날짜 : 1987.01.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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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공조작 적색데모 웬말이냐?-현재의 건국대사건의 진실을 알립니다
등록번호 : 00902086
날짜 : 1986.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도현(5차)
요약설명 : 건국대에서 열린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 투쟁연합' 발대식에서 발생한 정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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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건국대사건 첫공판 첫구형을 보고
등록번호 : 00960680
날짜 : 1987.01.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신대학교
요약설명 : 건대항쟁에서 구속된 학생들의 학부모가 구속학생들은 이 시대의 경직된 산물에 질려...
사진사료 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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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기소유예처분으로 풀려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상봉한 한...
등록번호 : 00714053
날짜 : 1986.11.2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건국대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기소유예처분으로 20일 상오 석방된 한 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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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사건 시위학생 연행
등록번호 : 00917910
날짜 : 1986.10.31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10.28건국대학교 사건, 연행되는 학생들, 반외세반독재전국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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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사건 진압
등록번호 : 00917911
날짜 : 1986.10.31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10.28건국대학교 사건, 소방호수로 진압, 반외세반독재전국애국학생투쟁연합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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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부 앞에서도 실탄 발사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각 대학 시위대는 아침부터 산발적으로 을지로 입구 내무부 앞에 모여 “내무장관은 마산사건을 해명하라!”, “국민을 우롱하는 내무부는 필요없다!”는 등 구호를 소리 높이 부르짖으며 질서정연하게 시위를 하였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서울대생들과 합류하여 기세를 올리던 건국대 학생들도 다시 행진을 시작하여 남대문, 서울시경찰국 앞, 한국은행, 미도파 앞을 거쳐 오전 11시 20분 경 내무부 앞에 이르렀다. 이들은 “내무장관은 마산 학생들을 모두 석방하라”, “정의의 싹을 죽이지 말라”는 등 구호를 외치며 주자앉아 농성에 들어갔다. M1소총을 든 경관들이 탄 트럭 한 대가 급파되고, 철책의 내무부 바깥문이 닫히고 잠시 동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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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초·중·고생 사상 65명, 실종 50명
일자 : 1960.4.22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그 중 사망자는 18명, 중상자 17명, 경상자 30명이라는데, 초등학교 아동도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중 행방불명된 학생이 이날 현재까지 50명이나 된다. 서울시 교육위원회 김 교육감을 비롯한 간부들은 유가족과 부상자를 방문하여 사망자에게 매 1인당 5만 환씩, 중상자에게 1만 환씩 경상자에게 5천 환씩 나누어주었다.『조선일보』1960. 4. 23 조3면동아일보에서 조사한 4·19사태 부상자 455명 명단수도의대 제2병원 (34명) •서강석(후암동 4) •정한종(청량리동 142) •박동석(서소문동 75) •신종호(돈암동 산48-1)•이해경(연지동 14) •장순영(대현동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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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발포명령 관계로 전 시경 보안과장 및 4.19시위 부상자 소환
일자 : 1960.5.26
분류 : 혁명입법과 혁명재판
요약설명 : 서울지검이주식 검사는 26일 오전 고상원(전 서울시경 보안과장)을 소환하여 심문하였다. 이날 소환은 유충렬(전 시경국장)의 변호인 김종렬의 요청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주식 검사는 고상원이 시위 당시 시경경비책임자였던 만큼 당시 시경 앞 발포사건에 대해 추궁하였다. 또한 경무대 앞 발포사건의 증거 수집을 위해 당시 선두에 섰던 학생 중 서울대·동국대·건국대 등 3개 대학생 2-3명을 소환하여 증언을 청취하였다.『조선일보』 1960. 5. 26 석3면 ; 『동아일보』 1960. 5. 27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