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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招待狀 [마석모란공원 열사묘역의 민족민주열사추모비 제막식]
등록번호 : 00034783
날짜 : 1997.11.0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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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에 묻힌 열사, 동지 소개자료집-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등록번호 : 00888217
날짜 : 19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모란공원에 묻힌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에 헌신하다 쓰러져간 열사들의 약력과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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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모란공원-전태일 열사와 모란공원
등록번호 : 00889098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그의 투쟁정신이 정리된 글과 마석모란공원에 안장된 열사와 희생자에 대한 소개와...
사진사료 3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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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3월 모란시장 노점상 단속
등록번호 : 00578598
날짜 : 1986.03.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성남주민교회
요약설명 : 1986년 3월 모란시장 노점상 단속 시 촬영한 사진 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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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봄 야외 예배 - 모란 뒷산
등록번호 : 00578452
날짜 : 1973.04.0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성남주민교회
요약설명 : 성남주민교회 1973년 봄 야외 예배에서 촬영한 흑백사진 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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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태일 동지 15주기 추도식을 하기 위해 모란공원으로 행하는 추모행렬
등록번호 : 00700861
날짜 : 1985.11.17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영상사료 1건
더 보기박물사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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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길 장로 금강산 방문과 국민훈장 모란상 수상
등록번호 : 00952082
날짜 : 1997.10.25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국민훈장 모란상 시상식에서 수상 받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모아놓은 사진 앨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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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모란장 훈장]
등록번호 : 00952088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받은 모란상 훈장. 무궁화가 새겨져있고 부장과 정장 두 점이 있으며 배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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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용 화조도
등록번호 : 00929800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부채모양의 종이에 그려진 화조도. 붉은색 천일홍과 모란이 새가 그려진 그림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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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요약설명 : 신세가 될 것입니다.” 2011년 9월 3일,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소선은 끝내 눈을 감았다. 가톨릭신문은 이소선의 삶을 아들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삶에 비유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자의 편에 섰던 소선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더 나아가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평생을 봉사하며 살았다. 소선의 장례는 시민장으로 치러졌으며 모란공원, 꿈에도 그리던 아들 전태일의 뒤편에 묻혔다. 약 9년의 세월이 지난 2020년 6월 10일에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이소선은 국민훈장 모란장에 추서되었다. 정지아(소설가)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1990년 실천문학에서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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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알았던 죽음 그러나 아무도 몰랐던 죽음 - 김경숙 일기
요약설명 : 10여 년이 지나서야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 중턱에 가묘나마 마련할 수 있었다. 그제야 어머니는 딸의 죽음에 대해 세상에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자살할 애기가 아니라고. 누나가 돈을 못 보내더라도 기다리지 마라 김경숙은 1958년 6월 5일 전라남도 광산에서 태어났다. 장녀였고, 밑으로 남동생 둘을 두었다.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가 행상에 나섰고, 경숙은 집안 살림을 하며 두 동생을 돌봤다. 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갈 수 없었다. 누군가는 어린 두 동생을 키워야했으니까. 그러다가 뒤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두 동생 중 하나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슬픈 일이었지만, 열 살도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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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어린 노동자의 죽음
요약설명 : 있었다. 가족들은 어려운 살림에 입원비 마련과 산재처리를 위해 애쓰느라 부친은 신경쇠약증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20살된 맏형은 직장마저 실직하였다. 문송면은 산재처리를 받고 6월 29일 산재지정 병원인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사지를 떨고 계속 토하는 등 증세가 점차 악화되고 무의식 상태로 들어가면서 7월 2일 사망했다. 고 문송면 산업재해 노동자장 장례위원회(장례위원장 이소선)는 7월 17일 그가 일했던 협성계공 앞에서 장례식을 거행한 뒤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그를 안장했다. 열다섯 살 소년 문송면의 죽음은 한국 사회가 노동자의 건강권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노동환경 개선...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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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모란개척단지 주민, 정부 대책 마련 요구하며 1주일 단식
일자 : 1971.7.3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계획적인 토지사기라 하여 말썽을 빚고 있는 경기도 광주군 대광면 둔전리와 중부면 수진리의 모란개척단지 일부 주민 3백여 명은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일주일간 단식농성을 벌이고 “정부는 모란개척단지의 토지 사기사건에 대해 책임지고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무주택자들이 입주권을 사들일 당시는 밤낮으로 불도저 등 중장비 30여 대로 매일 정지작업을 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지난달 2일 하천제방에 ‘하천부지에서 모든 공사를 금지한다’는 경고판이 경찰서와 군청 이름으로 세워지면서 사기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단식농성에서 둔전리 권순자(64) 등 3명이 실신했다.『동아일보』 197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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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개척단 7억 땅 사기 주범 김창숙 검거
일자 : 1971.7.6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서울지방검찰청성민경 검사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 4천2백만 평을 개간 ‘모란직할시’를 건설한다고 속여 1만여 명으로부터 7억여 원을 사취한 주식회사 모란개척단 단장 김창숙(46, 육사 7기 예비역 대령)을 검거, 사기·국유재산법 위반·하천법 위반 및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혐의로 긴급 구속했다.『동아일보』 1971.7.6. 7면; 『한국일보』 1971.7.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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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단지 주민 토지 무상분배 요구하면서 데모
일자 : 1971.9.13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모란단지 주민 중 아직 땅을 분배받지 못한 8천여 가구 주민대표 임영선 씨 등 1백여 명이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몰려가 “우리가 살아갈 땅을 무상으로 분배하라”는 등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데모를 벌이다 50여 명의 기동경찰에 의해 30분 만에 해산됐다가 11시 반경 다시 2백여 명이 모여들어 자기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무기한 단식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김종필국무총리가 직접 답변하라”, “국회는 이 문제를 다루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돌리며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기로 결의했다.『동아일보』 1971.9.13. 7면; 『한국일보』 1971.9.14. 7면; 『조선일보』 1971.9.14. 7면;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