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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어린 노동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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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생 문송면은 중학교 3학년 졸업 무렵인 1987년 12월, 집안의 경제사정이 어려워 공장에서 일하면서 야간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충남 서산에서 상경하였다. 문송면이 2개월가량 일했던 협성계공은 온도계와 압력계를 제조하는 회사로 작업 환경은 환기시설도 거의 없고 국소배기시설도 없는 곳이었다. 그는 최소한의 보호구도 없이 압력계를 시너로 세척하고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을 했다. 1988년 1월 20일경부터 불면증, 두통, 식욕감퇴 등을 보인 후 계속하여 통증에 시달려오다 증세가 심해져 2월 8일 휴직한 후 고대구로병원을 거쳐 3월 9일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검사결과 3월 14일 수은중독 및 유기용제중독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왔다. 

가족들은 산업재해(산재) 처리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산재요양신청서 중 회사 서명란에 날인을 받기 위해 회사를 찾아갔으나 회사는 날인을 거부했다. 수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날인을 거부하자 날인란을 비워둔 채 4월 7일 노동부에 산재요양신청서와 회사의 날인거부가 부당하며 산재요양허가를 요한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진정서만 접수시키고 사업주 확인 및 청구인 날인 누락을 이유로 산재요양신청서를 반려시켰다. 산재처리를 외면한 노동부와 사장의 불법행위 속에서 가족들은 회사 방문, 노동부 방문, 변호사 사무실, 대한법률구조공단, 노동부 진정 등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 나이도 어린 이제 올해 15세의 소년이 오직 배우겠다는 신념하나로 상경해 이렇게 엄청난 병에 시달리며 아직도 병상에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던 어린 근로자가 아직도 음지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있다면 이를 어찌 법치국가의 민주시민이라 하겠습니까. 자기 회사의 재직 중 생기는 사고 및 직업병에 대해 회사가 산재처리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치료조차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한테 억압적인 말로 돈이나 뜯어내려고 한다는 이런 악덕기업주가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맏형 문근면의 진정서 중)

결국 노동부는 처리기간인 10일을 두 달 이상 넘긴 6월 20일에야 산재요양결정통지서를 발부했다. 문송면은 장기간 입원 동안 체중이 14㎏이나 빠져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였고 전신 통증이 계속되고 있었다. 가족들은 어려운 살림에 입원비 마련과 산재처리를 위해 애쓰느라 부친은 신경쇠약증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20살된 맏형은 직장마저 실직하였다. 

문송면은 산재처리를 받고 6월 29일 산재지정 병원인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사지를 떨고 계속 토하는 등 증세가 점차 악화되고 무의식 상태로 들어가면서 7월 2일 사망했다. 

고 문송면 산업재해 노동자장 장례위원회(장례위원장 이소선)는 7월 17일 그가 일했던 협성계공 앞에서 장례식을 거행한 뒤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그를 안장했다. 열다섯 살 소년 문송면의 죽음은 한국 사회가 노동자의 건강권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노동환경 개선 필요성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