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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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방우영씨는 반역사적 작태를 즉각 중지하라]
등록번호 : 00106121
날짜 : 1989.05.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임재경
요약설명 : 사주 방우영씨가 조선일보 노조의 3.6자유언론실천운동의 역사적 정당성 선언과 3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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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조선일보 사주 방우영씨에 대한 비판]
등록번호 : 00106122
날짜 : 1989.05.1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임재경
요약설명 : 사주 방우영씨가 조선일보 노조의 3.6자유언론실천운동의 역사적 정당성 선언과 3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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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언론의 복직과 관련해 동아일보 김상만 회장과 조선일보 방우영 사장에게 보내는 글]
등록번호 : 00525167
날짜 : 1980.02.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상철
요약설명 : 복직과 관련해 동아일보 김상만 회장과 조선일보 방우영 사장에게 보내는 글
구술 컬렉션 2건
더 보기일지사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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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경비사령관, 조선일보 발행인 등 5명 고소
일자 : 1965.8.28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28일, 최우근수도경비사령관은 조선일보 발행인 방우영, 편집인 유봉영, 주필 최석채, 편집국장 김경환 및 취재기자 등 5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동아일보』 1965.8.28 석7면, 『경향신문』 1965.8.28 석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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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주필 선우휘 필화 사건
일자 : 1973.9.6
분류 : 민주화운동 > 언론
요약설명 :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는 9월 6일 ‘당국에 바라는 우리의 충정’이라는 사설을 홀로 써서 윤전기를 세우고 갈아 끼웠다. 사설은 “요즘 우리의 심정은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알 수 없고,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몹시 우울하고 답답하다”는 말로 시작해 “국민은 당국에 (김대중) 사건의 조속하고 떳떳한 해결을 촉구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정은 선우휘 검거에 나섰고 선우휘는 도피했다. 방우영 사장은 선우휘를 해임하기로 중정과 약속함으로써 이를 무마했으나, 얼마 후 중정 부장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되었다.“방우영조선일보명예회장의 신문만들기 55년 회고록”, 월간조선 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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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자들, 해임된 기자 복직 요구하며 농성
일자 : 1975.3.6
분류 : 민주화운동 > 언론
요약설명 : 안이한 패배주의와도 감연히 싸우며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방우영 사장은 긴급이사회를 연 뒤 “기자들이 신문제작 거부를 계속하면 사규에 따라 파면 조치도 고려하겠다”고 경고했다.『중앙일보』 1975.03.07. 7면; 『경향신문』 1975.03.07. 7면; 진실화해위원회 2008년 하반기 보고서, 제4권, 224쪽동아일보·조선일보 기자 해직사태 (요약)1975년 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대규모 해직사태가 벌어졌다. 동아일보의 경우 1974년 연말부터 시작된 유신정권의 광고 탄압에 사측이 굴복하면서 촉발됐다. 1974년 12월 26일 첫 백지광고가 나간 이후 사회 각계로부터 격려광고가 쏟아졌지만 사측은 1975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