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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선
사업개요
- 자유언론실천운동
- ‘유신 전기 민주화운동 역사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된 이번 구술 채록은 1972년 고려대 ‘민우지 사건’, ‘민청학련 사건’, ‘자유언론실천운동’ 등 세 가지 주요 사건을 기록했다.그중 ‘자유언론실천운동’ 주제의 구술은 당시 언론계 상황과 제1차 언론자유수호선언, 유신 선포 이후의 반대 투쟁 및 노조 결성 과정을 상세히 다루었다. 특히 자유언론실천선언과 백지광고 사태, 해직 이후 투쟁위원회 결성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으며, 구술자로 박종만(동아투위)과 최병선(조선투위)의 증언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유신 독재에 맞선 언론인들의 구체적인 저항 궤적과 실천 양상을 기초 사료로 구축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최병선
- 면담자
- 배병욱
- 구술일자
- 2021.11.2.
- 구술장소
- 서울시 중구 동아투위 사무실
- 구술시간
- 195분
구술컬렉션 > 재야운동 > 부문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64-1968 서울대 농과대학 농학과 졸업
1968-1972 공군 장교(중위 제대)
1972.3 조선일보 견습기자 입사
1975.3 조선일보 해직(당시 사회부·외신부 기자)
1975-1983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제1대 총무
1978 현대건설(1년 재직)
1979 상공회의소 조사부 재직
1980 ㈜오리콤[두산 광고회사] 입사
1993 ㈜오리콤 이사 퇴직
광고회사 경영
- 구술내용 요약
-
구술자는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일제강점기 상업학교를 졸업한 은행원으로 어린 시절 중산층 가정환경에서 가난하지 않게 지냈다. 모친은 이태영 변호사의 동창으로 유치원을 경영했으며, 양친 모두 지식인이었다. 정치적 성향은 그다지 드러내지 않았지만 야당을 지지했던 부친의 영향인지 구술자도 학생시절부터 정치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경기고 시절 이승만 말기와 4.19를 겪으며 장면 박사의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5.16으로 민주당 정권은 무너졌고, 구술자는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는 것이 정의롭지 못한 일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서울대 농대에 진학한 구술자는 한일회담반대 시위 등에 참가했지만 특별히 앞장서지는 않았다. 농학 전공을 살려 연구자가 되는 길을 포기한 구술자는 장교로 군복무를 했는데, 장교 군복무를 마치기도 전에 조선일보사 시험을 쳐서 합격했다. 정치문제에 관심도 많고 어려서부터 기자를 선망하기도 했던 그는 1972년 13기로 입사했다.
유신이전 조선일보의 편집국 분위기는 꽤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보적 의제에 대해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오히려 의견을 낼 때 진보적 의견이 주류였다. 다만, 결론은 항상 현실론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기는 했다. 당시 구술자는 조선일보가 특별히 나쁜 신문이라 인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민족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기자들에게는 지배적이었다.
모든 상황은 유신 선포 이후 달라졌다. 코리아나호텔 특혜 건으로 박정희정권과 밀착하기 시작한 조선일보는 계엄사의 직접 검열 기간이 지나도 편집국 간부들이 알아서 문제가 될만한 기사를 걸러냈으며, 이러한 행태들이 1974년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불렀다. 그 이전 몇 차례의 자유언론수호선언이 있었지만, 이를 강경하게 실천하기 위한 그야말로 실천선언이었다. 기자들은 기관원 출입배격과 취재한 기사의 반영 등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들기를 요구했다. 일견 조선일보 편집국의 태도는 모호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수호선언이나 실천선언에 자극받아 은근히 기자들을 부추기기도 했던 편집국은 실천선언을 통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백기범·신홍범 2명의 기자를 파면(74.12.18)한 것을 시작으로, 1975년 3월 6일부터 11일까지의 농성을 무참히 진압했다. 이 농성에 기자협회 조선일보분회 집행부 총무였던 구술자도 해고되었고, 해고자 32명이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를 결성했다.
조선투위 활동은 동아일보보다는 위축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양심을 지키기위해 동아투위와 연대하며 언론 문제에서 확장하여 민족과 자주의 문제까지 세계관을 넓혀갔다. 구술자는 조선일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최근 언론중재법에 기대를 걸었으나 이에 대한 실망도 크다. 구술자는 이제 조선투위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시민들에게 묻는다. 조선일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권력을 만들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스스로 권력이 된 나쁜 언론을 언제까지 용인할 것인가?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1975년 3월 해직 직전 농성에서 기자협회 조선일보분회 총무부장이던 구술자와 유건호 전무가 편집국 내에 붙여놓은 방을 두고 벌인 실랑이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