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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사업개요
- 민주화운동 원로인사
- 2019년 '민주화운동 주요 인사' 구술 수집 사업을 통해 원로 인사 청화 스님과 문대골 목사의 생애사를 채록했다. 6월 민주항쟁의 핵심 인물이자 10.27 법난 등 불교계 민주화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청화 스님, 그리고 기독교계와 함석헌기념사업회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문대골 목사를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수행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청화
- 면담자
- 권형택
- 구술일자
- 2019.6.18(1차),6.24(2차)
- 구술장소
- 서울 성북구 청암사
- 구술시간
- 258분
구술컬렉션 > 재야운동 > 부문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62 출가. 진관사에서 행자 생활
1967년경 화계사에서 사미계를 받음
1977~78 <불교신문>과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0 정토구현전국승가회 의장
1986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1992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1995 청평사 주지
2004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2006 참여연대 공동대표
현재 청암사 주지
- 구술내용 요약
-
청화 스님은 1943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했다. 아버지가 학교에 보내지 않아 뒤늦게야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4학년으로 중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해 이광수 산문집을 읽고 산사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
스무살 되는 해 이른 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무조건 상경하여 조계사에서 진관사 주지 누더기스님을 만나 진관사에 들어가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행자 초기에는 독서를 금하는 사찰의 규칙에 절망하여 음독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회복하여 용문사, 화계사에서 행자생활을 계속했다. 화계사에서 혜안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았고, 소요산 자재암에 있다가 해인사로 가 윤고암 스님께 구족계를 받았다. 여러 사찰들을 다니다가 소요산 자재암으로 돌아와 백일기도를 하며 건강도 되찾고 신도들의 신망을 얻어 정릉에 청암사를 설립했다.
1977년에는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시 <미소>로 당선되었고, 1978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채석장 풍경>으로 당선되어 시인으로 정식 등단하였다.
1980년 10.27 법난 이후 젊은 승려 모임에서 지선스님을 처음 만났고, 민주화운동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젊은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정토구현전국승가회를 만들었고, 청화는 초대의장에 추대되었다. 1987년 4.13호헌조치에 반대하는 불교계 성명을 발표하고 경찰에 연행되어 5일간 유치장에 구류되었다. 6월항쟁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로 참여하였다. 6.10대회에 참여하면서 시민들의 민주주의 열망을 확인하고 감동을 받았다.
1994년 서의현 총무원장 3선반대를 기치로 내걸고 종단개혁운동이 시작되자 여기에 중심적으로 참여했다. 범종추 의장으로서 종단개혁을 위해 초지일관 노력했다. 종단개현운동이 마무리될 즈음 신흥사 회주 오현 스님의 제안으로 청평사 주지로 취임하였다. 종회의원에도 당선되어 12년간 종회의원으로서 불교개혁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2004년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법장 스님의 간곡한 권유로 교육원장에 취임하여 불교계 도제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밖에 참여연대 공동의장, 유가협 후원회장 등을 맡아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 경험을 통해서 민주주의와 통일문제는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뭉치는 것이 좋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고, 젊은이들이 현실은 어렵지만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피력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청화 스님의 생애에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경험을 총괄하면서 향후 우리 사회에서 운동의 바람직한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술회하는 대목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