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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강기갑
- 면담자
- 차성환
- 구술일자
- 2024.10.20.
- 구술장소
- 경남 사천 흙사랑농장 사무실
- 구술시간
- 5시간 37분 16초
구술컬렉션 > 재야운동 > 부문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구술자는 1951년생으로 사천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농민운동에 참여한 1세대라 할 수 있다. 사천에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0년대 초부터 가톨릭에 입교하면서 가톨릭농민회 회원이 되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성장하기 시작한 농민운동에 참여하여 쌀생산비조사, 강제경작반대운동, 노풍피해보상운동, 을류농지세 개선운동, 농협민주화운동, 오원춘 사건 등 많은 활동에 헌신하였다. 농민으로서는 산지를 개간하고 젖소를 키워 원유를 생산하는 낙농가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그러나 강기갑은 농민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독재정권이 가하는 탄압으로 인해 개인의 낙농업 경영에 엄청난 부담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전두환 정권 초기에는 정권 측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그 결과 한때 수도사의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다시 농민운동으로 복귀하여 치열하게 싸웠다. 그 과정에서 1980년대 후반기에 농촌 총각의 결혼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그 책임을 맡기도 했다. 이 무렵에 한겨레신문 지국을 맡아 신문 보급에 힘을 쏟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이 결성된 이후에는 농민운동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몰두하여 많은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생업인 낙농업을 유지하기 어려워 불이익을 감수했다. 민주노동당에서 당 대표 등 중책을 맡아 활동했으나 당의 분열을 막지 못한 책임감으로 정계를 은퇴하여 현재 농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농민운동과 정당활동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구술했다. 그는 농민운동가, 정치인으로 민주화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로 인한 가정적, 경제적 불이익으로 늘 갈등에 시달렸던 이면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었다.
- 구술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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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과 유년시절
- 초등학교 시절
- 중학교 시절
- 고등학교 졸업 후 낙농업 도전과 허리부상
- 카톨릭 입교와 카톨릭농민회 입회
- 오원춘 사건
- 박정희 서거와 이후 더 심해진 탄압
- 긴급조치9호 위반
- 수도원 생활 후 농민운동
- 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
- 전국농민회총연맹결성과 김대중대통령과의 에피소드
- 의료보험제도와 연대 집회 후 재판과 집행유예형 확정
- 2004년 17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당선
- 국회의원시절과 경선당선
- 4대강 정비사업
-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죽음
- 이명박 정권과 통합진보당 창당
- 당 분열과 정계은퇴, 마지막 단식과 결과
- 진보의 분열에 대한 고찰
- 이석기내란음모사건
- 탈당 후의 생활
- 한국 농업의 위기
-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1979년 오원춘 농민에 대한 유신정권의 탄압에 저항한 가톨릭교회와 가톨릭 농민회원들의 치열한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