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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수상한 앨리스들 - 집
요약설명 :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 입니다. 철거 목표는 주거환경 개선 및 도시 재정비 하지만 늘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고층 아파트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철거는 여전히 계속됩니다... 상계동, 행당동, 봉천동, 그리고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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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단지사건-“산업화의 뒤안길, 도시빈민들의 처절한 투쟁”
요약설명 : 집은커녕 땅 한 평 살 돈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미아동, 상계동, 공덕동, 중계동, 구로동, 봉천동, 시흥동 등 서울 변두리의 산등성이에 찾아들어 무허가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끊임없이 이들 무허가 건물들을 철거했으나 한곳에서 철거당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 새로 짓는 자리이동만 되풀이될 뿐이었다. 마침내 서울시는 1968년부터 경기도 광주군에 대규모 토지를 사들여 서울시 철거민들을 위한 신도시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 계획은 1970년 350만 평에 35만 인구를 수용하는 것으로 확정된다. 이른바 광주대단지였다. “한 가구당 20평씩 평당 2천원에 분양한단다.” “입주하고 3년 뒤부터 3년간 분할상환하면 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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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시위, 6.26 광화문연합시위
요약설명 : 전개된 시위는 경찰기동대의 투입으로 진압되었다. 일부 학생들은 봉천동, 신림동 등지에서 '유신철폐'를 외치며 가두투쟁에 나섰다. 서울대 학생들은 학원민주선언에서 제시한 행동지침에 따라 5월 19일부터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6월 12일 서울대 시위는 6월 26일 광화문 가두시위를 예고한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3,000여 명의 학생들은 박정희 정권 퇴진을 외치며 3시간 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발표된 <학원민주선언>은 "6월 26일 오후 6시 세종로 네거리에서 서울시내 전 대학생과 시민이 집회를 갖는다."고 행동지침으로 제시하였다. 6월 26일 광화문 가두시위를 선전하기 위한 유인물 살포와 낙서가 곳곳에 행해져서 이...
일지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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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경찰서, 신민당원 2명 기관지 배포 건으로 입건
일자 : 1971.4.17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서울 노량진경찰서는 17일 상오 신민당 영등포지구당원 임병진 씨(49) 등 당원 2명을 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들은 17일 상오 10시 영등포구 봉천동 주민들에게 김대중신민당 대통령후보의 서울대 강연을 알리는 『민주전선』 호외 5천 장을 뿌린 혐의로 입건됐다.『경향신문』 1971.4.1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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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경찰서에서 『민주전선』 호외 살포 13명 연행
일자 : 1971.5.4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서울 노량진경찰서는 4일 오후 3시경 영등포구 봉천동 서초동 노량진동 일대에서 “국회엔 야당 많이 보내자”라고 외치며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호외를 뿌리던 이종관 씨 등 13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들이 뿌리다 남은 호외 700여 장을 수거하여 국회의원선거법 위반 여부를 검찰에 질의했다.『동아일보』 1971.5.5. 8면; 『충청일보』 1971.5.7. 3면; 『민주전선』 1971.5.1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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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에서 고지대 주민들이 수돗물 중단에 항의
일자 : 1972.6.8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밤 9시 30분경 서울 영등포구 봉천동 산 81 고지대 주민 100여 명은 지난 10일 동안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지난 7일 오후 6시 50분경 봉천3동 산 81에 사는 박순덕 여인이 임신 5개월의 몸으로 1km 남짓 떨어진 우물물을 길으러 다니다 과로로 숨졌다고 주장하며 박 여인의 이름과 주소를 쓴 종이를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공화당 영등포갑구 사무실로 몰려가다 봉천파출소에서 나온 경찰의 제지를 받자 동사무소로 몰려갔고, 김구현 영등포 수도사업소장이 밤늦게 동사무소에 나와 10일경부터는 물이 나오도록 조치하겠다고 무마함에 따라 밤 10시경 해산했다. 영등포수도사업소 측은 이 사태에 대해 수돗물 절대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