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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시내 학생이 주도한 첫 시위 발생
일자 : 1960.4.27
분류 : 시위 상황 > 제주도
요약설명 : 전인홍지사 역시 부재중이었다. 이들은 관덕정 광장에 있는 제주경찰서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도지사, 경찰국장과의 대면을 요구하였다. 이때 시위대에서 잠시 이탈했던 20여 명의 학생들이 영주시보사강필생 사장을 시위대 앞에 끌고 나왔다. 강 사장은 지난 4월 21일 제주경찰서가 주최한 도내각 기관장회의 때 “만일 (제주도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총으로 쏘아 죽이라”고 발언하여 시민들을 분노시킨 사람이었다. 결국 오후 11시 20분 전인홍지사가 시위대 앞에 나타나 자유당의 불법선거를 시인하고, 그 자리에서 지사직을 물러날 각오가 이미 굳어졌다고 말하며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를 찬양하였다. 시위대는 자정을 넘긴 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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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검찰부, 발포사건 관련 총경 등 11명 기소 중지
일자 : 1961.3.2
분류 : 혁명입법과 혁명재판
요약설명 : 2일, 특별검찰부는 4.19 당시 서울시경 관하 5개 경찰서장과 경찰국 경비계장 황경환 등 6명에 대해 기소 중지키로 결정하였다.『조선일보』 1961. 3. 2 석3면 한편 이날 오후, 특별검찰부가 전 제주경찰서장 조동한 등 5명이 기소를 중지한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이들은 조동한 전 제주경찰서장·노경진 전 목포·제주간 여객선 경주호 승무경찰관·고영철(무직)·김병기(무직)·피정식 전 반공청년단 충주시단 부단장 등이었다. 이에 따라 특별검찰부에서 기소를 중지한 자는 총 196명이 되었다.『조선일보』 1961. 3. 3 조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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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생 등 300여 명 데모
일자 : 1965.4.19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9일 오전 11시 반, 서귀포에 있는 제주대학 이농학부 학생 100여 명과 남주고교생 약 200명 등 모두 300여 명이 제주대학 이농학부 교정에서 성토대회를 열고 굴욕외교반대 결의문을 채택, “한일회담을 백지화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했다. 시위대들은 경찰 저지선을 뚫고 시가로 나갔으나 다시 경찰과 충돌, 시위 학생 5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나머지 학생들은 “연행학생 즉시 석방하라”고 외치면서 경찰서 앞에 몰려가 노상에서 연좌시위했다.『동아일보』 1965.4.19 석3면, 『경향신문』 1965.4.20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