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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용

구술자소개

구술자
신수용
면담자
박찬식, 김규리
구술일자
2010년 12월 2일
장소
제주도 제주시 하니관광호텔 커피숍
구술시간
1시간 45분 15초
구술아카이브 > 4.19혁명 > 제주 관련 구술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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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내용 요약

구술자는 1957년 제주대학 법학과를 1회로 졸업하고 같은 해 9월 30일 해병대에 입대하여 9개월 간 교육을 받은 후 1958년 7월 초 소위로 임관하여 소대장으로 부임하였다. 진해에 근무하다가 1959년 말 해병제주경비대에 발령을 받았고 1960년 3월 1일 중위로 진급하여 경비소대장의 임무를 맡고 있었다.
구술자의 부친은 제주신보사 전무이사인 신두방으로, 제주도에서 민주당에 입당하여 신익희 대통령 후보 선거운동 당시 선대본부장을 맡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구술자는 3‧15 선거 때 군부대에서 행해진 선거에서 투표권을 박탈당하게 되었다.
제주지역에서 행해진 4월말 관덕정 시위 때에는 해병경비대 자격으로 도지사 관사 등 공공기관 경비 활동을 펼쳤다. 당시 관덕정 시위 때 고정협 제주시장이 시위대에 의해 단상에 불려 올라가 문책을 받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시위에 참여한 제주대학생들은 대부분 구술자의 후배들이었기 때문에 구술자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못했다.
제주시 시위가 진정된 후 제주도 일원을 순시하면서 경비 활동을 펼쳤다. 서귀포경찰서에 갔을 때 경찰서장은 도피하고 경찰서장실에는 관덕정 시위를 주도한 제주대 법학과 고시홍이 서장실을 장악하고 있었다. 법환국민학교에 갔을 때에는 상당수의 주민들이 집회를 열어 격렬한 분위기였는데, 육군 경비대가 진정시키지 못한 상황을 구술자가 나서서 정리하였다.
4월혁명 당시 군은 시위 진압 등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경비활동을 벌였다. 군은 중립에 섰다고 할 수 있다.
여수‧거창 등지에서 과거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규명운동이 전개되자 구술자의 부친은 제주신보사 전무로 재직하면서 4‧3사건 진상규명운동을 펼쳤다. 제주대학생들로 구성된 '4‧3사건진상규명위원회'는 원래 '양민학살진상규명동지회'로 시작했고, 구술자의 부친(신두방)이 고문으로 추대되었다.(이문교의 구술 내용과 다름). 이 때문에 5‧16군사정변 직후 구술자의 부친은 구속되었는데, 함께 구속된 이문교와 연계되었는지 여부가 당시 재판의 쟁점이 되기도 했다.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10_4월혁명50주년_신수용(제주)_구술자료상세목록.pdf 69483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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