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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홍

구술자소개

구술자
고시홍
면담자
박찬식, 김규리
구술일자
2010년 11월 15일
장소
제주도 제주시 하니관광호텔 커피숍
구술시간
1시간 31분 48초
구술아카이브 > 4.19혁명 > 제주 관련 구술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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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내용 요약

구술자는 1958년 서울 교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한 뒤 1959년 4월 제주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60년 3월 자유당이 장기집권을 기도하는 부정선거를 통한 정‧부통령 선거를 자행할 당시 제주대학 법학과 2학년이었다.
1960년에 접어들자 부정선거 공작(3인조, 5인조 선거 등)에 관한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제주신보》 등 신문 기사를 통해서도 부정선거의 정보가 알려졌다. 1960년 2월 겨울방학 기간에 법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전국적으로 4월 18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제주도에서도 제주시내 고등학생 대표들과 연계하여 시위를 전개할 것을 모의하였다. 고등학생들과의 연결은 1958년과 1959년 두 해에 걸쳐 제주대학 법학과가 주최하는 세계인권선언기념식 행사에 고등학생들이 참여한 것을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4월 20일 아침 10시 30분에 제주대학생 30~40명이 대학 강의실에 모여서 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의했으나, 교직원들과 경찰의 만류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4월 27일 밤에 학생, 시민 등 천여 명이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전개하였다. 당시 고등학생 대표들은 제주대학 학도호국단 산하 농촌계몽단이 부정선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제주대학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는 등 대학생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다. 이때 집회 군중 앞에 구술자가 나서서 혈서를 쓰며 '기성세대 물러가라'고 외치자, 고등학생들이 제주대학들의 시위에 동참하게 되었다.
당시 제주도 시위에는 서울에서 시위를 치르고 귀향한 강경선(서울대), 강영석(중앙대), 고태호(연세대), 양영식(고려대) 등 재경 유학생들도 동참하였다.
5월 초에는 법학과 선배 이문교 등과 더불어 '4‧3진상규명동지회'를 조직하여 4‧3진상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제주대학생을 중심으로 '한국통일문제연구회'를 결성하여 통일방안 공청회(1960. 11. 13, 제주시 중앙극장)를 열어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5‧16이 일어나서 수배령이 내렸는데, 구술자는 제주대학 법학과를 휴학하고 동국대에 입학한 때여서 검거를 피할 수 있었다.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10_4월혁명50주년_고시홍(제주)_구술자료상세목록.pdf 70669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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