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443건
더 보기-
[한양공영 노동조합에서 작성한 자필 메모]
등록번호 : 00410270
날짜 : 1992.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
요약설명 : 한양공영 노동조합의 자필메모 -사전조정 -90년 8월 위원장선거 등
-
한양 합판 노동자 여러분[부당해고 관련]
등록번호 : 00411328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
요약설명 : 철회하라'고 외치는 한양 목재 정문 앞에서 농성중인 동료들과 같이 동참합시다...
-
차수련부위원장의 복직을 바랍니다, 한양대학병원노동조합 해고자 관련 자료
등록번호 : 00046698
날짜 : 1993.03.2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귀연
요약설명 :
사진사료 302건
더 보기영상사료 6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2건
더 보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 표현의 자유를 온 몸으로 외친 문인들
요약설명 : 《한양》지가 발간되고 있었다. 발행인이 민단계(民團系) 쪽 인사였지만 잡지 내용은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이 잡지는 꽤 많은 지면을 시나 소설, 에세이 등 문학 분야로 채우고 있었다. 일본을 왕래하는 문인들은 이 잡지사의 필자로서 방문하는 일이 가끔 있었고, 그곳 편집인 혹은 발행인과 만나 차를 나누며 담소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박 정권은 이 일을 빌미 삼아 모종의 흉계를 꾸몄다. 1974년 1월 15일, 중앙정보부는 ‘문인간첩단사건’을 발표해 이호철, 임헌영, 김우종, 장백일 등 문인들을 줄줄이 체포해 구속 수감한 것이다. 그동안 개헌운동 등 유신반대투쟁에 동참한 문인들에 대한 보복성 탄압이었다. 일주일...
-
오원춘사건-유신정권 붕괴를 예고한 조짐
요약설명 : 두 남자는 또다시 오원춘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이번에는 울릉도행 매표소가 바라다 보이는 한양여관 앞이었다. 그들은 여관 특실에 오원춘을 가둔 채 취조를 했다. “오원춘, 너는 1976년부터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시작했지? 1978년에는 네가 영양군을 상대로 농민들을 선동한 적 있어. 네가 했던 행동을 구체적으로 말해봐.” “선동이 아닙니다. 경북 영양군에서는 다섯 개 면의 농민들에게 가을감자 ‘시마바라’를 50킬로그램 한 포대당 8천원에 보급했습니다. 그런데, 그 종자가 불량이었습니다. 감자 종자를 받은 다섯 개 면 농민들의 8할 이상이 망했습니다. 저는 피해 농민들과 함께 대책위원회를 만든 뒤 영양군을 상대로 피해 보상을...
구술 컬렉션 5건
더 보기-
임종률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2.9.4./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근황, 경북고 재학 시절 2.28, 4.19 참여 경험, 서울대 법대 진학과 3.24시위 참여,...
-
신득철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3.7.23./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성동공고 진학과 학내 활동, 1964년 ‘백지동맹’ 사건 전말, 1965년 성동공고...
-
위해룡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백찬홍)
일자/장소: 2010년 10월 26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서울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4‧19 관련 주요단체 중 하나인...
일지사료 24건
더 보기-
서울 초·중·고생 사상 65명, 실종 50명
일자 : 1960.4.22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한양군 지공면) •김만용(22, 원서동) •임수빈(30, 영등포구 신길동) •이대종(19, 안암동) •백종하(21, 봉래동1가)•김태봉(20, 남창동) •문내봉(23, 충남 창경군 신관면) •방명용(22, 명동2가 28) •신북만(18, 전남 완도군) •함연기(25, 창선동 86) •김진출(31, 충남 대전) •김영태(미상, 을지로6가)•박원재(34, 중부) •김영주(26, 양동 6통 6반) •이동숙(20, 봉래동1가) •이성옥(23, 용문동145) •김동기(18, 반도호텔) •김용응(18, 아현동) •원군성(19, 광희동2가) •양재석(17, 광희동2가) •이건작(17, 마장동 451) •길희성(19, 신당동) •성신일(18, 제기동2가) •유몽열(17, 염리동) •김덕길(30, 도동1가) •김철운(20, 장충동2가) •이상의(16,...
-
한양대 200여명, 월미도 앞에서 철야시위
일자 : 1960.4.27
분류 : 혁명입법과 혁명재판
요약설명 : 서울의 한양대 학생 200여명은 27일 저녁 7시 20분부터 미(美) 인천항만사령부 어귀에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은 월미도를 향하여 “민주역적 이기붕·한희석 등 일당은 빨리 나오라. 국민 앞에 사죄하고 심판을 받으라”고 외쳤다. 이어 서울학생 대표 문효영 군 외 2명(한양공대)과 인천학생 대표 남창우 군 외 2명, 그리고 연세대 학생을 포함한 6명은 저녁 8시 50분 경에 동 사령부의 사령관 크레풀 대령을 방문하여 이기붕 일당이 관할 내에 있으면 수색하여 넘겨달라고 요청하였다. 미군 대령이 인천항 내 미군 전용 선박 등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관할구역 내에는 관련자가 없었다고 하자 서울학생 대표들은 “믿을 수 없는...
-
인천과 서울 학생들, 월미도에서 “민주역적 나오라”시위
일자 : 1960.4.27
분류 : 시위 상황 > 인천
요약설명 : 본부를 설치하고 경찰과 협조하여 치안확보에 노력하였 다. 한편 오후 7시 20분 경, 서울에서부터 한양대학수습반 200여 명이 트럭 2대와지 프차 2대를 타고 인천으로 왔다. 이들은 인천항만사령부 어귀에서 월미도를 향하여 “민주역적 이기붕, 한희석 등 일당은 빨리 나오라”, “국민 앞에 시죄하고 심판을 받으라”고 외치며 시위를 강행하였다.민주당의 김훈 의원은 27일 국회에서 “4·19사태 이후 자유당의 이기붕, 이정재, 한희석, 이존화 등이 인천월미도에 가족과 같이 피신 중이며, 400-500명의 경찰관이 수비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기붕과 그 가족이 월미도에 있다는 풍문이 돈 것이다(『조선일보』1960. 4. 27...